조나단의 날갯짓이 필요할 때
조나단의 날갯짓이 필요할 때
  • 배승철
  • 승인 2011.05.3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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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LH가 결국 경남으로 일괄이전하게 됐다. 이번 사건은 전북혁신도시 조성사업에는 물론 우리 지역 발전에 극히 부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여기서 부정적이라는 말은 LH가 빠진 전북혁신도시가 유명무실하게 됐다거나 지방세수가 줄어들게 되었다는 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난 산업화시대부터 소외되어 누적되어 왔던 도민들 가슴의 상처에 치유되기 힘든 트라우마를 남기게 되었다는 말이다.

LH의 경남 일괄이전은 철저히 정치적인 배경과 힘의 논리가 작용한 결과다. MB정부와 한나라당에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더 이상 경남 민심을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래 누리던 자의 박탈감이 더욱 큰 것이다. DJ 국민의정부 이전까지 1등 국민처럼 살아온 영남 주민의 민심은 10여년 간 권력박탈이라는 정신적 손상과 더불어 수도권 팽창에 따른 경제적 위축으로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왔다. 때마침 터진 동남권신공항 무산과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폭발 직전인 민심에 불을 붙이게 되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가 아무리 마이클 센델 교수의 공정한 사회와 도덕적 가치를 주장하고 외쳐봤자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분산배치 약속을 누누이 해놓고 손바닥 뒤집듯 일괄배치로 결론 낸 정부 관료를 질책해 보았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LH 경남 일괄배치 이후 지역 민심은 끓어오르고 있고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책임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전라북도는 파장을 최소화 하는데 노력하는 한편 정치권과 함께 헌법소원 등 법적 투쟁, 도민서명운동 전개 등 5가지 투쟁방안을 내놓고 밀어붙이고 있다.

공정한 경쟁의 법칙을 어기고 반칙과 편법을 통해 이루어진 LH일괄배치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끝까지 투쟁하고 시정해야 옳다. 하지만 정부를 상대로 잘못을 원상 복귀시키고 우리 몫을 찾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치열하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전북의 살길이 열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특히, 이번 일을 계기로 도에서는 전략수립에 있어서 의견수렴 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극히 정치적인 사안을 행정만능주의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사업 추진에 있어서 배타적이지는 않았는지 등을 철저히 복기해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지구촌’에서는 국가 간 경쟁뿐만 아니라 지역 간 대립과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 전국을 뜨겁게 달군 국제과학벨트, 동남권신공항, LH지방이전 등을 두고 각 지자체가 벌였던 경쟁이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2007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전북미래발전 구성 및 전략수립’ 보고서에서 전북의 샌드위치론을 언급하여 잠시나마 많은 도민들을 걱정케 했던 기억이 있다. 행정복합중심도시가 충남에 건설되고 이웃한 광주광역시가 호남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하고 있어 두 도시 사이에 낀 전북이 각종 인적·물적 발전자원을 흡수당할 위험이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이번 LH본사이전 실패는 도민들에게 잠시 잊고 있었던 샌드위치론의 기억을 되살릴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각종 지방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의 도내 본부가 연이어 광주로 흡수되고 있고 수도권규제정책에 묶여 공장입지 확보가 쉽지 않은 수도권 기업들이 속속 충남권에 유입되고 있다. 게다가 국제과학벨트를 유치한 대전 대덕은 엎어지면 코 닳을 곳에 위치해 있어 도내 R&D기능을 대체할 위협을 주고 있다.

반면 전북의 명운이 달려 있는 새만금개발사업은 어떤가? 정부는 거창하게 종합발전계획까지 만들어 놓았지만 실제로 사업이 추진되기 위해 필요한 세부예산계획은 세워주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 아닌가. 그래놓고 외려 “전북에는 새만금사업이 있지 않은가”라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산확보의 불이익으로 작용하고 있는 딱한 상황이다.

LH본사이전에 실패한 결과는 무겁고 아프다. 하지만 차후 절체절명의 위기는 이웃 광역지자체의 급속한 팽창에서 비롯될 수 있다. 수도권이 국부의 거의 대부분을 독식하고 나머지를 영남과 광주·전남이 나눠가지는 구도가 점차 굳어지는 것도 문제다. 전북이 호남의 변방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높게 날아 멀리 보는 조나단의 날갯짓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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