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우체국장의 영화에세이> 36. 그대를 사랑합니다
<시골우체국장의 영화에세이> 36. 그대를 사랑합니다
  • 김미진
  • 승인 2011.05.03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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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나 처음 웃기 시작했습니다

피부에 마른버짐이 번져서 까슬까슬해지는 것처럼 나이가 들면 사람의 감정도 그렇게 서서히 메말라 가는 줄 알았다. 파고다 공원 주변 어르신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노인네들 주책없다는 생각도 했다. 늙으면 그저 매사가 무기력해지는 줄 알았다. 사랑 또한 그런 맥락에 있을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당연한 존재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나도 늙어간다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한 채……. 무슨 건방인가. 2011년 2월부터 5월이 된 지금까지 절찬리에 상영 중인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영화가 있다. 인생 황혼기에도 정말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영화다.

▲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경향’일 것이라고

나는 이 영화의 주제를 ‘눈꽃 사랑 벚꽃 사랑’이라고 명명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은유를 빌어 그렇게 미화했다.

성격이 괄괄하기로 소문난 ‘김만석’ 할아버지(이순재분)가 함박눈 내리는 이른 아침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언덕배기를 올라간다. 우유를 배달하는 길이다. 그 앞으로 폐 골판지를 줍는 ‘송이뿐’ 할머니(윤소정분)가 언덕길을 내려온다. 만석은 미끄러운 길 조심하라며 리어커를 잡아주고 슬그머니 우유를 하나 넣어준다. 이뿐이 얼굴이 꽃처럼 붉어진다. 소담스런 눈밭에서 옥수수수염 같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만석은 이뿐이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선다. 이름도 주민등록도 없는 그녀를 입적해주고, 생활보장대상자가 되게 해준다. 까막눈이란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사연을 그림으로 그려서 창문으로 던져 넣고……. 오토바이 위에서 즐겁게 휘파람을 부는 모습은 평소 괄괄하기로 소문난 그의 위세와 거리가 멀다. 이뿐이 생일이다. 만석은 브로치를 사 들고 가서 케이크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어렵게 입을 연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어느 날 주차장 사무실에서 군봉과 나란히 앉아 있는 이뿐이를 보고 펄쩍 뛰는 만석, 결투라도 할 태세로 달려드는데, 군봉은 “네 편지 읽게 해주려고 한글 가르치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치매에 걸린 할멈 ‘조순이’(김수미분)를 돌보기 위하여 집 가까운 곳에서 주차 관리원으로 일하는 ‘장군봉’(송재호분) 영감에게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할멈이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자식들은 말로만 자주 찾아뵙겠다고 하고 얼씬도 하지 않는다. 일하는 동안 할멈이 밖에 나와 길을 잃을까 봐 외출 때마다 밖에서 대문을 철저히 잠그던 그가 한순간 깜빡했다. 우려했던 대로 순이가 집을 나와 길을 잃고 만다. 군봉의 애타는 모습이 눈물겹다. 순이는 우연히 놀이터 앞을 지나던 만석에게 발견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오는 길, 벚꽃 잎이 나풀거리며 그녀의 몸을 감싼다. 만복과 장군 커플은 순이를 위하여 바닷가로 여행을 간다. 마지막이 될 여행길에서 만난 바다 빛깔은 어쩌면 그리도 검은지. 시커멓게 타버린 사람의 마음이 이럴까?

여행에서 돌아온 군봉은 자식들을 모두 불러놓고 엄마를 보게 한다. 괴롭다는 말 한마디 않고 돌려보낸 후 안에서 문을 잠근다. 먼 길 떠나는 약을 나눠 먹고 방의 불을 끈다. 군봉은 늘어진 순이 손을 잡고 편안하게 영면한다.

한편 만석은 이뿐이와 함께할 행복한 앞날 설계에 부풀어 있는데, 이뿐이는 벅찬 감동을 식히지 않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다며 고향인 강원도로 떠난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뿐이를 찾아가는 만석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 그러니까 평소에 한껏 사랑하면서 살아

함박눈 내리는 언덕길에서 하나의 사랑이 시작되고, 꽃잎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서 치매에 시달리는 또 하나의 사랑이 저문다. 오토바이를 타는 만석과 리어커를 끄는 이뿐이는 시작의 이미지이고, 닫힌 공간의 주차관리인 군봉과 안방의 순이는 소멸의 이미지다.

순이가 살던 방에는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화단, 꽃, 별…….이는 다른 세계에 대한 판타지다. 그곳은 군봉과 같이 할 하늘나라일 수 있고,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이상세계일 수도 있다. 다가오는 사랑, 진행 중인 사랑, 지나간 사랑. 사람은 누구나 항상 사랑에 빠져 산다. 내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정녕 아름다운가?

※ 이 영화는 ‘2011년 전주국제영화제’ 무료상영작입니다. 5월 5일 20:00에 전주 오거리 구 ‘공무원연금매장’ 자리에서 상영한답니다.

<글: 수필가 이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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