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캠퍼스> 교육이야기 -53. 머물고 싶은 긍정(肯定)의 학교
<에듀&캠퍼스> 교육이야기 -53. 머물고 싶은 긍정(肯定)의 학교
  • 한성천
  • 승인 2011.05.03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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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창구에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10만원권 수표를 발행해 달라고 했다. 은행 직원은 약간의 수수료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중년 남자는 ‘내가 명색이 대학교수인데 수수료를 내야 하겠느냐‘고 버럭 화를 냈다. 은행 직원은 정중하게 VIP 고객이 아니면 수수료를 내야한다고 은행 규정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중년 남자는 다짜고짜 “교수가 VIP 대접도 못 받느냐”며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은행직원에게 던졌다. ‘손님은 왕’이라는 조직의 분위기 때문에 누구도 그러한 상황을 제지하는 직원은 없었다. 은행 직원은 당장에라도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심정일게다.

이러한 일도 있었다. 백화점에서 생긴 일이다. 한 여성이 오전에 3만원을 주고 립스틱을 사갔다. 그녀는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입한 사람에게 무료로 실시하는 고가(高價)의 메이크업 서비스도 받았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매장에 몹시 흥분한 얼굴로 다시 찾아왔다. 이유가 황당했다. “내가 실컷 아이새도우를 골랐는데 립스틱을 포장해 줬다. 손님을 이렇게 속이다니 분통하다. 어떻게든 보상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손님의 욕설과 하대(下待)는 빈번히 있는 일이었지만 억지를 쓰는 그녀의 태도를 그저 참으려고 하니 눈물이 나고 심장이 떨려서 밖으로 나왔다고 백화점 직원은 서비스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물론 백화점 측에서 주는 억울한 벌점도 받았다.

이러한 일은 은행이나 백화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 안에서 면세품을 사면서 항공사 승무원에게 “아가씨, 이리 와봐. 이거 얼마짜리야”라고 말하는 승객이 있는가 하면 자녀들의 손을 잡고 매장에 들린 부모가 직원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 사람처럼 되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한국인의 비천한 교양’ 또는 ‘어글리 코리안의 저열한 인식수준’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일은 대면서비스를 하는 직종에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의 후유증’이라는 신개념의 산업재해(産業災害)를 만들어내고 있다.

감정노동의 후유증은 교직사회에도 나타나고 있다. ‘교장들을 보면 발로 차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사회 지도층 때문에 묵묵히 2세 교육에 헌신하는 대다수의 교육계 원로들이 깊은 상처를 받는가 하면 막무가내로 ‘담임을 바꿔 달라’고 요구하며 참견하는 학부모 때문에 담임교사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한 상태다. 그들에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정신은 안중에도 없다. 학교가 매우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부패(腐敗)와 무능(無能)의 잣대를 교장과 교사에게 들이대는 일에 지식인들이 앞장서기도 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교직사회는 ‘우울증, 업무 탈진, 피로 누적, 무기력증, 소속감 결여, 회피’ 등과 같은 심각한 감정노동의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기쁨, 슬픔, 즐거움, 놀라움, 믿음, 분노, 지루함, 불안, 귀여움을 포함해 32개나 되는 감성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방대하고 미묘한 감성 체계 중 유독 부정적인 요소의 감성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미래는 무채색으로 덧칠되어 칙칙한 빛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사회의 반목과 갈등조차도 밝고 투명한 필터에 거르고 걸러 유채색의 산뜻한 감성이 학교에 전해져야한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의 억지스러운 논리가 학교 정서 전체를 지배해서도 안 된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조율과 화합을 통해 ‘머물고 싶은 긍정의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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