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전업주부
남성 전업주부
  • 이영원
  • 승인 2011.05.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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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신문사의 여론 조사 결과가 눈길을 끈다. 20,30대 남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응답자들의 약 70%가량이 아내가 경제력이 있다면 자신이 전업주부를 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내의 수입이 한 달에 360만 원 정도라면 기꺼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겠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과 광역시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지만, 이러한 내용은 20,30대 젊은 계층의 의식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면서도 달라진 우리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남성의 전업주부 사례는 그동안 TV 속에서도 간간이 등장하여 관심을 끈 바가 있다. 인기 있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소개되었을 뿐 아니라 요즘은 인기 주말드라마 속에서도 작가 아내를 돕는 가사 도우미를 대신해 자신이 직접 살림을 맡겠다고 나서는 남편이 등장하는 걸 보면 전업주부로서의 남편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흔히 전업주부라 하면 여성을 떠올리던 우리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TV가 갖고 있는 문화적 역기능 중 하나가 바로 고정관념(stereotype)이다. 대중매체인 TV가 갖는 문화적 순기능은 사회 교육 시스템으로 시청자가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는데 필요한 규범과 가치 등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용자의 사회화 과정에 도움을 주고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TV의 문화적 기능은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누적적인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특정 계층이나 직업을 TV에서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수용자가 특정 계층이나 직업에 대해 갖는 이미지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일부 계층이나 직업에 대해 획일적이거나 부분적인 면만을 강조할 경우, 수용자들은 TV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의 고정관념(stereotype)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사회나 계층에 대한 열린 시각 보다는 편협한 평가나 사고를 갖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하겠다. 흔히들 TV 속에 등장하는 화려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을 보면서 그들의 숨은 땀과 눈물은 모르는 채, 화면에 비쳐진 모습만을 보고 그들을 선망하는 청소년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지 않다.

이번 여론 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남성 전업주부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남성과 여성의 성적 역할과 직업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지만, 한편으론 다분히 실용적인 요즘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청년 실업이란 사회문제의 영향도 있고, 이미 모계 중심 사회로 쏠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에 따른 영향력도 가능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고등 교육을 받은 아들이 집안 살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처럼 젊은 남성들이 사회적 야망을 접고 전업주부로 올 인 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저변에는 무엇보다 육아에 대한 부담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맞벌이 부부가 갖는 가장 큰 고민과 부담이 바로 육아문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남성 전업주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하는 젊은 여성들의 큰 고민거리인 육아 문제를 사회 시스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멀쩡한 남자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사회적 손실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육아 문제는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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