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젊은이가 불나방처럼 수도권으로 뛰어들고 있다. 면적은 전 국토의 11.8%에 불과하지만, 수도권의 자산 가치가 전체의 3분의 2나 된다고 한다. 인구의 절반이 포진하고 있으며 경제 활동인구가 집중되어 있고, 지역구를 둔 정치인들조차, 아니 지자체 단체장은 물론 공공기관장들 대부분이 서울에 주소를 두거나 연고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그 이유는 돈과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 그곳에 살아야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층에 장관이 살고, 옆집은 판사가 살고, 아래층엔 경찰 총경이 살기 때문에 빗을 얻어 강남아파트로 이사를 간 사람들 때문에 서울(수도권)은 포화상태이고 지방은 빈집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처럼 어른들을 따라 인재들이 고향을 등지며 향하는 서울은 어떤 곳일까. 도대체 서울이 뭐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곳을 동경할까. 필자가 보기엔, 숨이 턱턱 막히는 곳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정을 둘 때가 없으며, 왠지 삭막하다. 표정들이 무겁고, 서로 경계한다.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 건물 사이로 쫓기듯 달려가는 수많은 차, 큰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자기 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서울의 거리, 배려 없는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이끌어가는 매력 없는 서울, 에스컬레이터가 운반해주는 삶을 최고의 행복으로 착각하며 살아 가는 서울, 그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최고의 학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벌떼처럼 모여드는 서울(대한민국)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지금 극단적인 선택(영재들의 연쇄 자살)을 서슴지 않는 젊은이에게 말해야 한다. 더 늦기 전 세상엔 최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필요하다고, 말(馬)처럼 억지로 물가로 데려와 물을 먹지 않는다고 몰아세운 것이 잘못이라고, 그들이 죽음으로 말하려 한 것조차 무시하는 어른들의 욕심을 용서하라고, 지금이라도 왜 물을 먹어 두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배가 불러 먹지 못한다면 굳이 나무라지 말고, 충분히 휴식하도록 배려하고, 자신의 주인이 자기임을 느끼도록 인내를 가지고 조목조목 가르쳐줘야 할 것이다. 말의 갈기도 빗질해주고, 굽도 손질해주고, 목덜미도 쓰다듬어 주고, 눈을 맞추며 엉덩이도 다독거려 주고, 대화를 시도하고, 이 봄에 새싹이 돋는 곳으로 데려가 그 맛을 권하며 위로하고 격려해 줘서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는 긴 안목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무조건 서울 속(치열한 경쟁대열)에 몰아넣고 줄을 세우지 말고, 먼저 철학과 비전이 정립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고 살펴줘야 한다. 특히 젊은이가 고향의 자연과 부모 형제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살 수 있도록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줘야 할 것이다. 남을 위한 희생과 봉사가 얼마나 귀한가를 차분히 시간을 두고 설명해 줘야한다. 그리고 어른들(지도자와 정치인들)은 과감하게 화려한 수도권의 불빛(돈, 권력, 기회 등의 집중화)을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풍요로워지고 개인의 삶이 윤택해지고, 젊은이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을 접하지 않을 거란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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