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소리-김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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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경
  • 승인 2011.04.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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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산(黃榜山) 산행유감(遺憾)

전북향토문화연구회 김종하

주말산행으로 모처럼 전주근교에 자리한 황방산을 가족들과 함께 오르게 되었다.

황방산의 유래는 전주지형을 풍수적으로 보아 서북쪽이 공허하여 서기(瑞氣)가 빠져나갈 수 있고 북쪽에서 숨어들어 오는 재앙이 있을 거라는 고려시대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전라관찰사 이서구(1755-1825)의 예언으로 이를 비보한다 하여 (땅두둑방)자를 넣어 황방산(黃 山)으로 표기해 왔고 다른 한편으로 尨(삽살개방)자를 넣어 황방산(黃尨山)으로도 쓰여 졌었다는데 그 연유는 역시 공허(空虛)한 북쪽의 건지(乾止)를 누런 삽살개가 밤샘으로 짖으며 재앙(災殃)을 막았다는 전설로 보아 오늘날 황방산(黃榜山)을 황방산(黃尨山)으로 고쳐 부르는게 옳다는 말이 오간다.

이 ‘황방산’ 중산지점의 납암정( 岩亭)에는 청동기시대의 문화유물로 원형이 잘 갖추어진 고인돌 1기가 있다. 이 고인돌 등 부분에는 여러 개의 성혈(性穴)의 흔적이 있는데 부녀자들이 돌을 갈아 마시면 아이를 낳는 영험이 있다는 말이 전해 왔다고 한다.

다시 정상을 향해 표고 217m지점에 이르면 ‘소바위’이라는 고인돌이 있다. 그 고인돌은 등위 중앙에 구멍을 파 받침대로 하여 ‘여의송계기념비(如意松契紀念碑)가 세워져있다. 이 비를 보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눈에 거슬려 자못 아미를 찌푸리기 일수다. 그 옆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이 비(碑)는 소나무를 지키겠다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뜻은 가상하다 할지라도 청동기시대의 문화유산을 훼손하면서까지 계비(契碑)가 세워졌음은 전주에 사는 문화시민으로서 자존심을 잃게 한다. 전주시는 이 비를 지금이라도 철거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했으면 한다.

전주시는 천년의 문화를 간직한 지역으로서 어느 지역보다는 살아 숨쉬는 문화재를 발굴하고 보호해야 한다. 날로 쇄락해가는 문화재를 이처럼 흉물스럽게 훼손하여 방치함은 문화재를 애호하는 시민으로서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전주시 문화관광과에 대해서도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황방산에는 ‘황방산성’을 비롯하여 ‘되바위’, ‘서곡육마을’, ‘서고사’, ‘일원사’ 등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주시는 이들 문화재를 보다 관심있게 발굴하여 민족문화유산을 보호하는 문화시민으로 거듭나게 했으면 하는 마음 건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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