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행복의 조건
봄과 행복의 조건
  • 김우영
  • 승인 2011.04.2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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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와 산수유 꽃, 벚꽃과 조팝나무 꽃으로 이어지는 봄꽃들로 오랜만에 봄날의 행복을 만끽하나 싶었더니, 갑자기 설악산엔 폭설이 내린단다. 추운 겨울 동안 우리가 인고하며, 기다리던 봄날의 행복은 그냥 오지는 않는가 보다. 우리는 세월의 연륜을 통해서 봄날이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침에 가벼운 봄맞이 옷을 입고 나섰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아침엔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여간 고민이 아니다. 그렇지만 봄날의 꽃들을 시샘한다는 꽃샘추위가 밉지는 않다. 봄날의 행복은 겨울동안의 인고와 초봄의 변덕스런 날씨를 감내해야만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완전한 봄을 누리기까지는 긴 겨울과 초봄의 험난한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인생의 행복을 누리는데 있어서도, 오랜 세월과 삶의 숙련된 경험이 필요할 수 있다. 행복은 준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지혜, 용기, 절제, 정의와 같은 덕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덕들을 갖출 때, 비로소 행복의 문턱에 들어 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이들 덕들만으로도 인간은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주장한다. 유덕한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고통과 불행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유덕한 삶은 곧 행복한 삶이다.

그러나 현실적 인간들이 누구나 인정하듯이, 유덕한 삶이 곧 행복한 삶은 아니다. 인간의 삶은 어느 정도 물질적 조건을 충족해야만 행복해 질 수 있다. 따라서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물질적 사회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특히 플라톤이 말한 덕목들 이외에도 친구들과의 우애를 행복의 조건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최소의 물질적 조건으로도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는 삶의 지혜를 강조한다. 결국 우리가 행복의 물질적 조건의 최소화에 도달할 수 있다면, 언제나 유덕한 삶은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중년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하는 고통과 고난들이, 행복을 위한 지혜, 용기, 절제, 정의의 덕들을 숙련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그 당시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목표인지 모른다. 그러나 유덕한 삶이 많은 경험과 지속적인 숙련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마리의 제비가 난다고 해서 봄이 오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면서, 유덕한 삶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봄날의 행복이 긴 인고의 계절을 감내함으로써, 맞이하고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인생의 행복도 오랜 연륜의 세월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모른다.

최근 매우 흥미 있는 기사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영국의 일간지 테레그래프는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나이는 몇 살일까? 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여기에서 벨기에의 마스트리흐트대학교의 경제학자, 베르 반 랑드흐헴 교수는 그의 연구를 통해서 연령별로 직면하는 환경적 특성을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20대는 삶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비교적 적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지만, 20대 후반부터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책임이 늘어나 만족감이 줄어듦으로써 더 불행감을 느끼게 된다.

랑드흐헴은 중년층이 느끼는 불행의 정도는 “실직하거나 가족을 잃는 것과 비슷하다”고 분석하였다. 불행감이 증가하다가, 50대가 되면서 인생을 수용하는 법을 배우면서 인생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회복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차츰 만족감이 증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의 만족감은 20대에서의 만족감과는 그 질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랑드흐헴은 “청년이든 노인이든 누구나 65세 보다는 25세가 되기를 원할 것”이지만, “다만 65세 즈음에는 자신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삶의 연륜이 인생의 행복으로 연결된다는 주장은 랑드흐헴 만의 주장은 아니다. 지난 달 영국의 런던 대학 생물학과의 루이스 월퍼트 명예 교수 역시 그의 책을 통해서 인생의 행복은 80세 즈음 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노년에 이를수록 행복감이 더 증가한다는 것은 아마도 삶의 지혜를 통해서 보다 적은 비용으로 인생을 잘 살고, 즐기는 방법을 터득한 결과로 보여 진다. 이것은 인간이 유덕한 삶을 통해서 행복해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대가가 봄날의 꽃샘추위처럼 결코 가볍지 않음을 우리는 아마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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