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시를 품다 /이운룡 시집
사랑이 시를 품다 /이운룡 시집
  • 김미진
  • 승인 2011.04.04 16: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랑은 남녀간 연모의 정을 뛰어넘어...
“사랑은 빛을 타고난 신의 전율이다. 신의 눈빛이 세상을 밝혀주었듯이 사랑은 빛 가운데 진화하고 처음부터 가슴 속 풍경을 만들어 나에게 한 생을 선사했다.” 「사랑이 詩를 품다」에서

이운룡(72) 시인의 시집 ‘사랑이 詩를 품다(한국문학예술·1만2,000원)’는 흘러간 옛 사랑이 아니라 시인이 느끼고 있는 오늘의 사랑이야기다. 남녀간 연모의 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초인주의의 광활한 정신 영역까지를 포함하는 사랑인 것. 사랑을 꿈꾼다는 것은 생명을 생명답게 향유하려는 인간 역사의 위대한 창조 정신에 다름 아니라는 게 시인의 생각이다.

시인은 “늦은 나이에 싱거워진 삶과 맵고 짠 인간 문제를 생각하면서 뜻밖에 사랑시가 나왔다”면서 “사랑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시를 품더니 손과 손을 맞잡은 당신의 모습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그의 시는 새벽 산행과 명상의 산물이다. 새벽에는 정신이 가장 맑게 정제된 상태라 무색계(無色界)의 사물도 투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 주기에 한번 시가 태동하면 시인은 그 동안에 축적되어 있던 체험과 이미지들이 한꺼번에 수십 편씩 줄줄이 쏟아낸다. 사랑시가 줄줄 나온 것도 이른 아침, 사랑과 그에 대한 느낌이나 관심을 좀더 극화시키려 집중한 결과다.

“팔과 팔, 손과 손 사이에 가슴이 있다. 가슴은 몸의 시뻘건 주심이다. 손은 서로가 가슴 쪽으로 굽어져 거리를 좁히고 벌린다. 양쪽에서 잡아당기면 틈새의 가슴은 출렁출렁 물컹해지고 사랑 하나만 강하다”「손과 손 사이」에서

‘손’과 ‘손’은 시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제재다. 시인은 한 몸의 두 팔과 손은 끝내 하나가 될 수 없지만 두 손이 하나로 작용할 때 쉽고도 온전하게 일을 수행할 수 있듯, 상대적인 사랑은 완전한 통합을 지향하려해도 하나가 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시인이 선택한 시어들은 사뭇 이질적인 사물과 그 질료들이 모여 절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분법적인 색채감이지만 서로 보색 대비 효과를 얻어 어울린다.

“초록 햇살 잘근잘근 씹어 삼키다 과식하여 향기가 세포마다 단단히, 촘촘하게 박혀 있다. 햇살의 붉은 향기를 아삭 베어 물어 하늘의 육질을 깨무니 하늘 맛이 상큼 달다. 하늘 맛, 햇살 맛이 달디 단 것은 사과하늘이 제 살갗 실컷 태운 천기누설 때문이다.”「사과」에서

소재호 시인은 시평설 통해 “마치 식물의 엽록체에서 빛과 물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등을 끌어내어 광합성을 일으키는 현상처럼 이질적 질료들이 빚어내는 포도당 합성법이 바로 선생이 추구하는 시 창작의 비법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집은 ‘당신의 향기’, ‘마음꽃 피다’, ‘다슬기’, ‘하늘 문빗장’ 등으로 갈래를 타 달달한 사랑시 60편을 소개하는 것 외에도 40편의 시를 ‘명상록’으로 묶어 담고있다. 시인은 아침잠에 깨어나 명상에 잠겼던 사랑의 상대성에 관한 내용들이며, 이를 곁들여 시집 읽기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고 진폭을 확장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진안 출생으로 전북대 국문과와 한남대 대학원을 졸업한 시인은 조선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받고 중부대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월간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해 전북문인협회 회장, 표현문학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세계한민족작가연합 부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열린시문학회 시 창작교실 대표, ‘한국문학예술’고문, ‘시와시’ ‘시와경계’ 편집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미진기자 mjy30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