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완순 한국라인댄스협회장> 라인댄스 보급 일생 바칠 터
<육완순 한국라인댄스협회장> 라인댄스 보급 일생 바칠 터
  • 송민애
  • 승인 2011.04.0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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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가 육완순씨((사)한국라인댄스협회장·77)는 한국 현대무용계의 대모(大母)다.

이화여대 체육과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그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원과 마사 그레이엄 무용대학을 졸업, 한국에 처음으로 미국의 현대무용을 소개하며 무용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이대 무용학과를 비롯해 서울대·경희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수없이 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한국컨템퍼러리 무용단·현대무용단 탐·현대무용단 네사람·한국현대무용단 등을 창단, 실력있는 무용가들을 배출해냈다.

뿐만 아니라 수차례에 걸친 무용발표회와 논문발표회를 통해 교육무용의 이론화에 커다란 공적을 남기기도 했다. 무용가와 안무가, 무용 이론가 등으로 폭넓은 활동을 펼치며 한국 현대무용을 뿌리를 닦아온 것이다.

지난 2일, (사)한국라인댄스협회 전북지부 및 전주시지회 창단식에 참여한 육 회장을 만났다.

전주 출신인 그는 오랜만의 고향방문에 사뭇 들뜬 모습이었다. 육 회장은 “고향에 올 생각을 하니 너무 설레어 며칠 전부터 잠도 제대로 못 잤다”며 “더욱이 한국라인댄스협회 전북지부와 전주시지회 동시 창단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하게 돼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이렇게 아이들이 자유롭게 무용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내 어릴 적 생각이 나 사뭇 감회가 새롭다”고 전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무용을 배웠던 1940∼1950년대는 무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던 시기. 당시 이화여대에 입학해 무용을 전공하려 했던 그는 집안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야만 했다. 그러나 무용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가출 아닌 가출을 감행했다.

“지금이야 누구나 자유롭게 무용을 배우고, 즐길 수 있지만 그때는 무용에 대한 인식이 정말 부정적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무용 전공하는 것을 집안에서 엄청 반대했죠. 그래도 무용에 대한 제 열정과 고집은 꺾을 수 없었어요. 결국 전주 역 플랫폼으로 밀고 들어오는 증기기관차에 무조건 몸을 실었죠. 여자 혼자 몸으로 집을 떠난다는 게 얼마나 무섭던지…. ”

지난 날을 회상하던 그의 눈시울이 끝내 붉어졌다. 이후 그는 무용에 대한 열정 하나로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은 곧 한국 현대무용의 역사가 되었다. 그렇게 한국 현대무용의 기틀을 다져온 그가 지난 2007년 돌연 생활무용의 일환인 ‘라인댄스’ 보급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처음 한국에 도입된 라인댄스는 당시 무용계와 생활체육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8년에는 라인댄스의 체계적인 보급을 위해 사단법인 한국라인댄스협회를 비영리단체로 발족,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하며 전국적인 조직체로 발돋움시켰다.

그는 앞으로도 라인댄스를 온 국민 누구나 건강하게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로 보급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 백년 넘는 세월 동안 한국 현대무용의 산 증인으로 살아온 육완순 회장. 그의 또다른 도전이 한국 무용계에 새로운 활력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송민애기자 say2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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