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본 전북정치>­ 12, 관료역습
<사자성어로 본 전북정치>­ 12, 관료역습
  • 박기홍
  • 승인 2011.03.29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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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官僚逆襲: 관료역습

정치권에 전직 관료들의 바람이 거세다. 전문적 식견과 경험을 높이 사는 현대 사회에서 관료들이 정치권을 노크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전북에서도 전·현직 공직자들이 정치권에 도전하거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관료들의 대역습이라 말할 정도로 이들은 파괴력을 자랑한다. 그 단면을 중견 정치인의 독백 형식으로 진단해 보았다.





‘행부 3인방’을 아십니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관가(官家)에 전설처럼 떠도는 말입니다. 당사자들은 ‘일인지하 만인지상’ 이형규, 전희재, 이경옥 전 행정부지사 3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도백 다음으로 높은, 2인자 자리에 올랐던 이들은 본인의 의중과 상관없이 잠재적 총선 후보군입니다.

얼굴이 다르듯 성격도 천차만별이지만 주변인의 오감을 자극할 정도로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해병대 출신의 의리파 이형규, 몸이 빠르고 머리 회전이 좋은 전희재, 날카로운 지혜로 ‘갑속에 든 칼’로 비유는 이경옥 등 3인의 전직 부지사가 나란히 민선 4, 5기 도정을 거쳐갔습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했던가요? 가만히 있어도 송곳은 주머니를 뚫고 나옵니다. 이들은 행부 자리를 물러난 뒤에도 행정공제회 이사장을 거쳐 새만금위원(이형규)으로, 한나라당 당협위원장에서 정치 수업을 거쳐 국민체육진흥공단 경주사업본부 본부장(전희재)으로, 국가 기록원의 지휘자(이경옥)로 각각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운명이 ‘행부 3인방’의 능력을 시기하고 질투하듯, 민주당 정세균 최고위원이 떠나 무주공산이 된 무진장·임실에서 금배지를 둘러싼 운명의 한판 대결을 예고합니다.

행정부지사 출신이 유력 후보로 회자하는 것은, 꼭짓점까지 오른 검증된 행정·정치력에 세태의 변화에 따른 것입니다. 실제로 관료들의 정치권 진입에 세상 인심은 너그럽다 못해 풍족합니다. 18대 총선에 출마해 낙선한 한명규, 작년 지방선거에서 정읍시장에 올인 했던 송완용 등 2인의 정무부지사 출신도 이런 분위기에서 도전을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정무부지사 출신을 둘러보니, 19대 총선의 석패율을 내다보는 태기표 전 정무부지사도 칼을 갈고 있습니다.

전직 행부나 정무의 목표가 주로 여의도행 금배지라면 도청 국장급 인사들은 기초단체장을 겨냥합니다. 작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안개처럼, 미래가 불확실하고 매일 잠 못 이룰 것을 알면서도 과감히 사표를 던지는 사례가 점증하고 있습니다. 새만금경제청의 이환주 전 본부장이 그렇고, 강춘성 전 전북도 감사관이 그렇습니다. 남원시장 재선거에 출마하겠다며 최근 홀연히 공직을 그만뒀지요. 무릎을 꿇고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 한 제국을 건설한 한신 장군도 그랬듯, 공천장만 준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고위 공직자들은 20대 청춘부터 한 세대를 보내면서 때로는 장·차관도 꿈이었고, 단체장들이 국회의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권 진입에 성공한 선배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야망을 키워갔습니다. ‘관료대전(大戰)’으로 불릴 정도로 수많은 공직자가 20대 중반부터 손에 쥔 행복을 정년인 60까지 이어가기 위해, 또 나라와 고향을 경영하겠다는 당찬 의지를 갖고 ‘철의 장막’으로 비유되는 정치의 문을 오늘도 두드리고 있습니다.

행안부 출신은 단체장에 나가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패 신화’의 주인공 송하진 전주시장이 벤치마킹 대상입니다. 그는 2006년 2월 행정자치부 지방분권지원단 단장 자리를 걷어찼습니다. 어릴 적 꿈이었던 군수가 되기 위해 탄탄대로의 미래가 보장된 공직을 미련없이 그만 뒀지요. 이후 인구 10만 이하의 군수 자리보다 7배나 큰 전주시장에 당선돼 재선 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그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사람들을 찾아나선, 민심 대장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반면 실패 사례도 적잖습니다. 잘생긴 외모에 서울대 법대 등 최고학벌을 자랑하는 모씨는 2000년대 초반 행정자치부 국장직을 박차고 뛰어나왔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서열파괴 인사에 충격을 받고 평소의 장관 꿈을 접은 채 국회의원 출마에 나섰지만 결과는 낙선의 쓰라린 패배였습니다. 정치판의 성패는 사람의 운명을 갈라 놓았습니다. 정치는 이렇듯 냉혹하다 못해 순간의 선택과 전략이 명운마저 뒤바꿔 놓을 수 있는 거지요. 중앙 정치권에 줄을 잘 서서 재선, 3선의 영예를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발 뒤축이 닳도록 지역을 누벼도 실패하는 사람은 계속 실패하는 게 정치 생태계입니다.

박기홍기자,서울=전형남기자 hn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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