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0의 발견
숫자 0의 발견
  • 최고은
  • 승인 2011.02.2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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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0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0은 무한히 많은 수를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열 개의 아라비아 숫자 중 첫째 숫자이다. 0은 모든 수 가운데에서 가장 늦게 찾은 수이고 동시에 늦게 발전된 수이다. 0이란 없다는 개념이고 그러나 0의 위력은 대단하다. 만일 0이란 숫자가 없다면 234와 2340과 2034와 2304를 어떻게 구별한단 말인가? 그런데 고대 피타고라스나 유클리드나 아르키메데스조차 0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오래전 미국에서 모처럼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자동차 여행을 할 때였다. 길 옆 허름한 햄버거 가게를 지나다 ‘햄버거 2,000,000,000,000개 이상 제공’이라는 간판을 보게 됐다. 간판에 새겨진 숫자들은 작은 못으로 고정돼 있었다. ‘얼마나 될까’ 호기심이 생겨 차를 멈추고 그 수를 세기 시작했다. 0은 모두 12개나 되었고 그 수는 자그만치 2조나 됐다. 그때였다. 세찬 바람이 불더니 간판에 새겨져 있는 0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0 하나 없어진 것이 얼마나 많은 햄버거를 없앤 것일까? 궁금해졌다. 2조에서 0이 하나 빠졌으니 햄버거는 2천억 개가 된다. 놀랍게도 그 많은 0가운데 단지 0하나가 사라진 것인데 햄버거는 무려 1조 8천억 개의 햄버거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0이 가진 대단한 위력을 다시금 생각했다.

학교에서 배운 숫자 0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한다. 식탁 위에 있는 사과 2개를 모두 먹어버리고 나면 하나도 남지 않은 것처럼 2-2=0이고 이때의 0은 무(無)를 의미한다. 정말 0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0이란 숫자가 발견되기 전(약 1500년 전)에는 200이나 202 같은 숫자를 표현할 때 0의 자리를 비워둠으로써 빠진 자리값을 표시했다. 숫자 202는 2 2, 2002는 2 2로 썼던 것이다. 하지만 이 체계로는 숫자를 잘못 읽을 가능성이 컸다. 오늘날 0이란 숫자가 없다면 200을 0없이 쓸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글로 이백이라고 쓰거나, 이집트 문자로 100을 나타내는 그림을 두 번 그리면 될 것이다.

수학 문장으로는 2×5×2×5×2나 199+1, 299-99 등으로 0이 없이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많다면 나무가지를 모아 정(正)으로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숫자가 커질 경우에는 시간이나 종이, 노력 등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렇듯 1에서 9까지의 숫자만으로 큰 수를 나타내려면 복잡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결국 0이 있었기 때문에 위치에 의한 수 표현이 가능하고 그로 인해 셈이나 수의 기록도 편리해진 것이다. “없는 것을 숫자로 0이라 하자. 값이 없는 자리를 0으로 하자.” 이처럼 간단하고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이 작은 발상이 수학의 발전을 가져온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0의 발견은 머리 속에서나 상상했던 수를 현실세계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한 것이다. 수학에서 0은 비어 있는 자리를 나타내는 숫자, 또는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숫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양의 정수(자연수)와 음의 정수의 중간적인 자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먼저 52와 502를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숫자의 위치가 자릿수를 의미하는 이런 표기법에서 0은 '비어 있는 자리'를 나타내고 있다.

기원전 바빌로니아 인들은 혼동을 피하기 위해 0의 사용을 권장하였고 그리스인들이 이것을 도입하여 지금과 비슷하게 생긴 기호(동그라미)를 정착시킨 것이다. 그러나 0이라는 수에 더욱 깊고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것은 너무도 심오하여 그로부터 수세기가 지난 뒤에야 인도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힌두의 수학자들은 0이 숫자들을 구별하는 기능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고유한 수임을 간파한 것이다. 1과 2가 고유한 수인 것과 마찬가지로, 0 역시 엄연한 수로서 존재한다. 즉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수인 것이다. 이전까지는 전혀 구체화시킬 수 없었던 무(無)의 개념은 0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실제적인 기호로 표현할 수 있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0의 등장은 그다지 혁명적이지 않는 별 볼일 없는 사건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들도 0이 갖고 있는 깊은 의미를 눈치 채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0을 가리켜 규칙에서 벗어난 수라고 하였다. 나눗셈을 할 때, 임의의 수를 0으로 나누면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이 난점은 6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해결되었다. 인도 수학자들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무한대라는 개념과 연결시켰고 7세기 학자 브라마굽타는 임의의 수를 0으로 나눈 몫을 무한대의 수학적 정의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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