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도의 피로감
우리가 시속 300km의 KTX를 한 시간 타는 것과, 무궁화호열차를 한 시간 타는 것은 시간적으로는 같다. 하지만 인체가 느끼는 리듬은 다르다고 한다. 고속 이동이 가져오는 피로감이 저속 이동보다 더 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늘 피로에 시달리는 것은 사회속도의 고속화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역시도 속도의 충돌인데, 예를 들면 물자의 이동이나 정보의 흐름은 점점 고속화되어 가는데 비해, 인체의 맥박 수나 호흡수는 수천 년 동안 변함이 없다. 또 아나운서들의 말하는 속도를 보더라도 60년대엔 1분간에 300단어를 말했는데 80년대에는 400단어, 지금은 500단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체리듬이 따라가지 못하는 고속의 이동과 고속의 정보처리에서 오는 피로감이 자신도 모르게 쌓여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는 생활전반에 배어있다. 자판기의 버튼을 누른 후 단 몇 초를 못 참고 컵 나오는 곳에 손을 넣은 채 기다리는 것은, 커피라는 차를 즐기려는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문화나 경제구조의 현실만 봐도 빠른 성장으로 인해 놓친 것들이 뒤늦게 발목을 잡곤 한다. 과정이 무시되는 ‘결과 우선주의 문화’나 효율만을 강조하다 보니 인간성이 상실된 ‘노동문화’ 같은 것들 말이다. 또 기업경영의 측면을 보자면 핵심부품의 연구개발은 뒤로 미루고, 로열티를 지불하거나 수입하는 방식으로 완제품개발만 서둘러 왔다. 그 결과로 ‘원천기술’이 부족하고, 원천기술을 보유하지 못하였으니 당연히 세계시장의 ‘표준선점’에서 뒤쳐진 것도 사실이다.
* 돌아가는 삶
하지만 우리사회는 그렇게 효율만을 강조하다 놓친 것들에 대해서 참 무감각하다. 여전히 자본의 효율을 잣대로 언제든 값 싸게 쓰고 버릴 수 있는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또 고용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인적 아웃소싱도 일반화 되었다. 한집안의 가족 중에도 잘나고 못난 게 가려지는데, 우리의 대기업에는 수만 명이 있어도 잘난 사람들뿐이다. 청소부, 경비원, 주차장관리원 등 허드렛일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 회사를 다니지만 그 회사 직원은 아니다. 자본의 효율을 쫓아 근로자의 인권과 인격을 유린하는 것이다. 한데 그처럼 효율만을 중시하는 경영이 옳은 것이라면 왜 기업의 수명은 자꾸만 짧아질까? 미국기업의 평균수명이 1955년에 45년이었는데, 지금은 15년이다. 우리기업들 역시 2000년에 12.7년이던 게 현재는 중소기업은 11년에 불과하고, 1965년에 100대기업 중에서 지금 생존해 있는 기업은 단 12개뿐이다. 이는 기업에서 추구하는 효율로는 한시적인 확장은 가능할지라도 행복하게 오래 유지할 수는 없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생존방식에 늘 직선만 있을 수는 없다. 삶에서 '재미'라는 화두를 놓친 채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에만 매달리며 살아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보다 모든 게 풍족해지고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지만,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우리의 삶을 짚어 보며 새해부터는 곡선이 주는 ‘돌아가는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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