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더구나 지방에서 산다는 것이 어쩌면 쫒기는 토끼의 처지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도권 집중화로 황폐화된 지방은 변방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을 가리켜 시골이라고 부를 때 ‘변방의 존재감’이 더욱 확연해 집니다. LH 공사 이전 문제의 책임 당사자인 정부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 중앙정부의 교부금이 줄어들고 책정된 교부금마저 받지 못하면서도 이를 항의 하지 못하는 지방자치단체를 볼 때도 같은 느낌입니다. 서울대 합격을 자랑하는 학교와 학원의 플래카드를 볼 때면 우리 스스로가 서울에 속하고 싶은 변방 사람임을 확인해 주는 듯하여 씁쓸합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문제를 ‘수도권 종속화’라고 한다면 ‘대기업 종속화’ 역시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에 의한 지역 종속화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제빵시장에서 유명한 두 개의 기업형 업체가 시장을 대부분 석권함으로써 지역업체가 운영하는 제과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통닭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한 프렌차이즈점이 아니면 장사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프렌차이즈점은 본사가 상당한 이윤을 가져가기 때문에 소비자는 비싼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대기업 종속화가 심해질수록 소비자의 가격 선택권이 좁아지고, 더욱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미 FTA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 관련 기업에게는 이로울지 몰라도 농민들에게는 정부로부터 다시 한 번 버림을 받는 확인서와 같습니다.
각박한 경쟁 사회에서 토끼의 지혜를 생각해 봅니다. 전주시 교동의 한 자장면집에서 따뜻함을 느낍니다. 손님이 가게에 직접 와서 드시면 자장면 한 그릇에 이천오백원이고, 배달시키면 삼천오백원을 받는 자장면집이 있습니다. 가게까지 직접 찾아 주는 손님의 수고를 자장면 값에서 빼주는 합리적이고 따뜻한 주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막걸리 한주전자는 만오천원, 두주전자 부터는 만이천원을 받는 전주의 막걸리집 가격 역시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격 책정에 손님들도 공감합니다. 콩나물 국밥집에서도 ‘많이’ ‘적게’를 미리 이야기 하면 손님의 요청에 맞는 적당량의 국밥을 주는 것도 참 합리적인 사례입니다. 대기업 유통점과 프렌차이즈점에서 느끼기 힘든 일입니다. 작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큰 흐름에서 볼 때 역시 도민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 시절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의 소외를 딛고 정권을 바꿔낸 도민들의 지혜로운 선택이 우리 사회를 바꾸는 큰 힘이 되었음을 기억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지혜를 모읍시다. 신묘(辛卯)년 새해를 맞아 대기업의 경쟁 논리와 변방의 소외감을 넘어 따뜻하고 지혜로운 지역공동체로 나아가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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