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영 시인/완주경찰서 정보보안과장> 세월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박철영 시인/완주경찰서 정보보안과장> 세월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 김경섭
  • 승인 2010.12.27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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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듯 말 듯 하는 침묵의 겨울 만경강을 따라 해가 진다.

새치 같은 희끗희끗한 눈발이 사선을 그으며 참 쓸쓸하다.

쏜살같다고 하기도 하고 백마가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한다던 세월…. 그 한 세월이 저문다.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뜨겁게 사랑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벅찬 감동이 있었든가.

희망의 불씨를 보려는 끝없는 절망의 나락도 없었던 비눗기를 닦아내지 못한 세안 같은 느낌의 한해가 절룩거리며 등을 보인다. 외롭고 적막하다.

박인환의 시처럼 그래도 세월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일까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지난 것은 다 아름다운 것일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되는 걸까 그래도 서러운 것은 서럽고 미운 것은 미울 것인데.

세월은 다 똑같은 것인데 언제나 달력 끝에 이르르면 착한 사마리아인 처럼 회한과 가슴을 적시는 듯한 상념의 시간을 만든다.

더군다나 우리 경찰에게는 잊고 싶은 것과 잊고 싶지않은 것이 더욱 극명하게 교차하며 머리는 차갑게 비고 가슴은 뜨겁게 옥죄어온다.

다사다난으로 함축하기엔 너무나 많은 역설이 송곳처럼 예리하다.

전쟁과 평화, 미움과 사랑이 각기 공존하며 그럴듯한 말에 포장되어 참으로 많이도 공포와 혼란을 겪었기 때문일까.

거기에다 한번이라도 사회에서 밥벌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어느 해처럼 올해도 피곤하고 누추한 삶이 더 했으리라….

세월은 가도 올해 같은 옛날은 정말 남아 있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초나라 왕이 낚시로 소일하는 장자에게 벼슬을 주겠다며 사신을 보냈다.

장자는 낚싯대를 쥔 체 돌아보지도 않고 응대했다.

“초나라 조정에 죽은지 3천년이 된 신묘한 거북이가 있지 그 거북을 비단천에 싸서 상자에 놓고 귀하게 모신다고 하는데(거북 껍질의 갈라지는 형상으로 나라의 점쾌를 봤음) 만약 당신이 거북이라면 죽어 뼈를 남기면서 귀하게 되기를 바라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속에 자유롭게 꼬리를 흔들기를 바라겠소”.

진흙속에 내 멋대로 꼬리를 끌면서 살고 싶다는(生而曳尾塗中) 장자의 말에 사신은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고사의 여유가 한없이 우러러 보이는 까닭은 범사가 불안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삼례들판이 차디찬 어둠으로 완전히 누웠다 몇 개의 별마저 없었더라면 절벽의 밤이었을 것인데 하늘이 있음을 애써 알린다.

눈발이 거칠다…. 사랑하는 사람아 눈이 풋풋한 해 질녘이면/마른 솔가지 한단 쯤 져다 놓고/그대 방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싶었다/ 저 소리없는 눈발이 그칠때까지….(강우식 설연집3 중 일부)

이해가 다 가지 전에 우리 사랑하는 사람 가슴에 서로 서로 마른 솔가지를 지피며 내년을 기약해보자 저 소리 없는 눈발이 그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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