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노미(藏頭露尾), 왜 진실을 두려워하는가?
장두노미(藏頭露尾), 왜 진실을 두려워하는가?
  • 김우영
  • 승인 2010.12.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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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새해로 시작했던 백호의 해 경인년이 저물고 있다. 년초에는 희망과 함께 새해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년말이 되면, 항상 다사다난했던 한해로, 회환과 실망을 되새기게 된다. 올해는 백호의 상징으로, 깊은 불신과 갈등의 대립구조를 극복하고, 관용과 평화의 사회로 나아가기를 기대했지만, 지난 일년을 지금 돌이켜 보면 , 남북 간, 계층 간, 종교 간, 정파 간의 갈등과 대립이 오히려 심화된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수출이 세계 9위를 기록하고, 유럽연합, 인도, 미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의 타결로 해외 시장의 확대를 가져오고,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 서울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국내의 경제성장율도 년초의 전망치를 상회하고 있다. 경제회복의 기대감으로 증시도 2000선을 돌파하는 등, 경제 지표 상의 정부의 올해 성적표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국내 정치에서의 갈등과 대립을 유발하는 일방 통행식, 임기응변식 정국 운용은 작년에 이어 마찬가지로 그간의 공을 상쇄하는 질책을 받고 있다.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장두노미(藏頭露尾)를 선정하였다. 무슨 뜻인가? 원래 원나라의 문인 왕엽이 지은 ‘도화녀’라는 작품에 나오는 말이다. 쫓기던 타조가 머리를 덤불 속에 처박고 꼬리는 미처 숨기지 못한 채 쩔쩔매는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낸 모습, 말하자면 진실을 감추려고 진땀 빼는 인간 군상을 이르는 말이다. 교수들은 올해 4대강 논란, 천안함 침몰, 민간인 불법사찰, 한미 자유무역협상, 예산안 날치기 처리 등 많은 사건 처리 과정에서 정부는 의혹을 해소하기 보다는 진실을 덮고 감추기에 급급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러한 사자성어가 선정되고 공감을 얻는 것은, 현 정부에 대해서, 국민을 설득하기 보다는 의혹을 감추는 일방 통행식 정국 운영을 멈추고, 국회 및 일반 시민들과 소통하라는 민의의 표현으로 보여 진다. 사업의 비효율성, 남북관계의 실패, 불법 사실, 협상의 실패, 예산의 불공정성 등 우리가 직면해야 할 불편한 진실들은 감추고 덮을 사항들이 아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진실 앞에 당당해야 한다.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더 큰 위험과 좌절을 예방해야 한다. 진실을 두려워해서는, 더 큰 불법, 불공정에 대해서 침묵해야 하고, 더 큰 실패를 용인해야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 어떤 정책도 실패 할 수 있다. 과오와 실패는 인간의 일상사이며, 용서받지 못할 죄는 아니다. 그러나 용서받지 못할 과오는 공자가 말하듯, ‘잘못을 알고도 이를 고치지 않는 것’이다.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은폐하며, 이를 고치지 않는 것은 계속해서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만일 이것이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것이라면, 개인적인 재앙일 뿐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올해는 사회, 정치적으로 유난히 장두노미처럼 진실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인하고 감추기에 급급했던 사건이 많았던 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는 미국의 외교 문서를 공개함으로써, 은폐된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진실을 밝히고, 진실을 원하는 것은 공자가 말하듯, 잘못을 알고 이를 고치기 위함이다. 이는 용서와 화해, 발전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진실을 두려워하며, 끝없이 견강부회, 미사여구, 책임회피 등으로 진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군상들을 목도해야 할지 모른다. 그들의 뻔뻔스러움과 부도덕, 몰상식이 두려운 것은, 그러한 행태가 사회적으로 갈등과 대립을 심화시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덕적 불감증과 도덕적 냉소주의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이 밝혀지고, 진실에 직면할 때, 공유된 진실을 통해서, 우리는 갈등과 대립을 넘어 생산적인 논의와 소통을 할 수 있다. 진실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이 우리를 끝없이 구속한다. 진실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쩔쩔매는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을 얽어매는 부자유를 본다. 예수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은 우리는 진실을 받아드림으로써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이르는 것이다. 새해엔 누구나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장두노미(藏頭露尾)가 아니라 장미노두(藏尾露頭), 큰 잘못은 드러내고, 작은 허물은 감추어 주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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