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덕진구청장 > 한옥의 멋과 슬로시티 지정의 기쁨
<박종호 덕진구청장 > 한옥의 멋과 슬로시티 지정의 기쁨
  • 이방희
  • 승인 2010.12.10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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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살다보니 이런 저런 챙겨야 할 집안일들이 발생한다. 사랑채 서쪽에 새로 생긴 다락에 살림살이를 챙겨 넣는 일부터 집안을 두루 돌아가며 연장을 치우고 떨어진 낙엽을 치워줘야 하는 등 잡일이 많다.

며칠 전에는 고장 난 김치냉장고를 뜰 한쪽 음지에 묻어두었다. 사실은 수수료를 물고 버리려고 했지만 아시는 분이 땅에 묻어 저장고로 쓰면 아주 유용하다며 알려주셨다. 덕분에 사과, 고구마, 양파, 배추 등 과일과 야채를 신선하게 저장해서 먹게 되었다.

두 해 넘게 오목대 아래로 터를 잡고 한옥을 지어 살아가면서 나는 종종 한옥의 멋스러움에 감탄하곤 한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나무에 못을 박지 않고 홈을 파서 이음새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외풍이 심하지만 집을 지을 때 나무와 흙만을 이용하여 짓기 때문에 인체에 해로움이 없고 자연에 가장 친화적인 주택 구조를 이룬다. 그래서일까. 한옥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처하나 없는 청명함과 부드러운 유연함을 간직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우물반자 혹은 격자천장이라고 하여 여러 개의 반자를 井자 모양이 합쳐 진 것처럼 소란(小欄)을 맞추어 짜는 방식인데 한옥을 지을 때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부분이다. 안채로 들어가는 마루의 천장이 바로 이 우물반자로 빚어진 높은 천장으로 장인정신이 서려 있어 격조 높은 명작이다.

한옥의 지붕은 집의 인상을 결정짓는다. 토방에서 올려다보면 추녀 끝에서 지붕을 향해 뻗어 있는 서까래와 겹처마의 오묘한 이음새가 웅장하다. 마치 옛 선비의 단호하면서도 곧은 기상을 연상케 한다. 이런 긴 처마 덕분에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 주고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주니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지혜로운가!

문과 창에는 뽀얀 한지 창호지에 들꽃 무늬를 넣었다. 창살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은 분명 온 누리에 평등하게 비추임에도 한옥 안채에서 내려 받는 느낌은 색다르다. 마치 온통 투명하고 따뜻한 빛 안으로 나를 옮겨 놓는 듯 하다.

바로 이렇게 내가 한옥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소한 즐거움을 주면서도 가끔 비 오는 날 저녁이면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천지간에 울림이 되어 황홀해지기까지 하는 귀한 시간들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전통적인 목조구조 양식인 한옥은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는 별로 선호되지 않는 가옥이다. 내가 살아보니 겨울이면 외풍이 있고 개·보수도 자주 해줘야 한다. 목조라서 화재에도 위험하며 장기간 마음 놓고 집을 비워둘 수도 없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갖가지 야생초가 피어나고 이제 막 푸름을 발산하고 있는 어린 소나무가 심어진 정원과, 단정하게 조화를 이룬 장독대를 바라보면서 우주와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건 역시 한옥이다. 한옥은 아름다운 생명력이 살아 있으며 돌을 다듬어 받친 장대석이나 흙을 구워 만든 기와까지 여전히 아름다운 물성을 유지하면서 사용된다고 하니 살아갈수록 참 신비로운 가옥이다.

얼마 전 우리 한옥마을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기쁨과 함께 나는 아름다운 한옥에서 중용과 도리를 소중하게 여긴 조상의 지혜를 배우며 체험하고 있다. 슬로시티는 지나친 서구화와 현대화를 지양하고 그 지역만의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우리시가 추구하는 한옥, 한식, 한지 등 전통문화가 그대로 보존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슬로시티가 추구하는 느림은 과도한 속도로 지치고 힘든 현대인에게 유유자적하면서도 순수함을 알려줌으로서 사람들에게 고요한 평화를 심어준다. 슬로시티 지정 뒤에는 아름다운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는 지역주민의 의식이 중요하다. 작은 골목길, 작은 공원에 심은 나무 한그루, 길가에 구르는 작은 돌맹이 하나까지도 슬로시티 전주를 상징하고 그 이름을 빛나게 해줄 소중한 우리의 자산임을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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