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봉 덕진경찰서 생활안전과장> 晩秋(만 추)
<박상봉 덕진경찰서 생활안전과장> 晩秋(만 추)
  • 김은희
  • 승인 2010.11.30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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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에도 오래도록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책을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해맬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詩《가을날》에 나온 대목이다.

지난 주말 중부지방엔 첫눈이 내리긴 했지만 이곳 전주는 아직 눈발이 내리지 않아 이 가을의 마지막을 외치듯 모든 것이 고통스러워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어제 山을 오르니 그토록 ‘빛의 고통’으로 인한 단풍잎들이 곱고 찬란하게 까지 하더니만 이제 그 아름다운 나뭇잎들이 무수히 떨어져 산길을 온통 낙엽천지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푸르름으로 가득한 지난 여름의 정취는 사라지고 삭막한 초겨울의 빗 바람이 등산객의 귓불을 후려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나무들도 앙상한 가지들만 가늘게 흔들거려 지나간 시간들만 원망하는 상태로 ‘自然의 윤회’가 시작되는 그러한 심정을 주고 있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김현승의 詩를 되뇌이며 한아름 가슴속에 담겨져 오는 가을 내음을 맡는다. 헨델의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 본다. 가득히 눈물이 고인 눈가엔 세월의 흔적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가을엔...왠지 울고 싶어진다. “쏴”하고 합창하는 풀벌레 소리들, 눈부신 햇살, 상큼한 공기, 시리도록 파란하늘, 다가선 山 그리고 기세꺽인 잎새들….

이제는 그 풍요로웠던 시절은 가버리고 낙엽도 지더니….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비바람 속에 풍화되는 세월의 무게 속에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며 그 아스라한 時間의 층계위에 앉아 긴 想念에 젖는다. 人生을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생각하던 2~30대도 지나고 人生을 철학적으로 해석해보려던 40대도 지나고 이제 기도와 정성으로 삶을 추스르고 싶은 50대의 중반에 다다랐다.

새삼 生命에의 외경과 自然에 대한 경찬으로 모든 게 숙연해짐을 느낀다. 작은 새싹하나 미미한 벌레 한 마리 길가에 삐져나온 하찮은 풀 한포기, 구름 한 조각, 바람한 줄기, 어느 것 하나 貴하고 신비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나의 人生이 가을 길에 접어들어서 이리라.

하지만 계절을 타지 않고 늘 청정한 아름드리 老松을 보며 우리는 어떻게 늙어가야 할 것인가를 배운다.

결실과 마무리를 함께 하는 늦가을의 길목에 서서 나는 노래 한곡을 불러본다.

《나는 니가 좋아》

“나는 니가 좋아 좋아. 사랑의 향기가 나는 女子라서.

말없이 주기만 하는 나는 니가 좋아 좋아.

내가 힘들 때 위로해주고 안아주는 니가 좋아.

만나면 맑은 미소 산소같은 내 女子 나는 니가 좋아 좋아.

(박상봉 作詩, 김수환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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