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진 군산여상교사·문학평론가> 발전 담보한 비판적 교육전문지되어야
<장세진 군산여상교사·문학평론가> 발전 담보한 비판적 교육전문지되어야
  • 이수경
  • 승인 2010.11.25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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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교육개혁은 늘 사회적 화두였다. 응당 지금도 그렇다. 신문이라든가 잡지 등 교육전문지가 많은 것은, 일단 그 때문으로 보인다. 교육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과 폭발적인 수요에 부응하는 당연하면서도 일단 긍정적 현상으로 보는 이유이다.

그러나 교육문제가 첨예한 화두일망정 그 개혁이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대 국민의 정부 말기 보충수업 폐지가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었지만, 결국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오히려 보충수업을 정부가 적극 권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바로 이때 교육전문지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요컨대 정부의 ‘나쁜’ 정책이나 반대여론이 치열한 교육 이슈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는 등 교육언론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냐는 것이다.

일례로 필자는 지난 해 12월 진행된 제6차교장공모제 과정에서 심사위원(학교운영위원)의 금품요구 사실을 이런저런 교육전문지(신문)에 제보한 적이 있다. 서울시 교육청 금품수수 비리사건이 온나라를 시끄럽게 하던 무렵이었다. 내심 ‘특종’을 기대했지만, 교육신문들 반응은 취재를 거친 보도는커녕 아예 묵묵부답이었다.

물론 언론에 비판적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대로의 각종 정보전달도 주요 기능중 하나일 터이다. 그런데도 비판적 기능을 강조하는 것은 교육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가령 어느 교육전문지는 교육관련 비판적 칼럼은 전혀 싣지 않고 있다. 교과부 정책이나 훈훈한 미담 같은 것들만 대대적으로 싣고 있는 신문을 제대로 된 언론이라 할 수는 없다. 말할 나위 없이 그 ‘착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교육현실의 총체적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과부 기관지도 아닌 그 신문의 그런 편집 및 보도 태도는 교육전문지의 위상을 현저히 폄하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에 너무 강성적 논조의 신문, 그보다 조금은 덜한 신문, 교원단체가 아닌 개인 발행인의 신문들이 나름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교육잡지쪽으로 시선을 옮겨 보면 더 실망스럽다. 발로 직접 뛰지 않고, 컴퓨터로만 많은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가령 인터넷에 이미 올린 글을 필자의 동의는 구했을망정 재수록한다든가 하는 제작태도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확고한 생각이다.

굳이 이해하자면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재정문제가 한 이유이지 않을까 한다. 대략 그 지점에서 부족한 광고 유치, 저조한 유료 판매부수 등 열악한 교육전문지 제작여건의 현실이 짐작된다.

설사 그렇더라도 남의 소중한 원고를 ‘공짜로’ 쓰려는 그런 ‘얌체짓’은 근절되어야 한다. 말할 나위 없이 원고료는 단순히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원고료는 좋은 글(비판적 칼럼 등)의 기사를 견인할 수 있는 훌륭한 장치이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자본주의의 시장경제에서 유독 일반 신문 등 교육전문지만은 적자에도 불구하고 도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신문은 사회의 거울이요 목탁이다. 교육언론도 마찬가지다. 교육에 관한 한 일반 신문보다 더 사실적이고 심층적이어야 한다. 비판적이고 대안적이어야 한다.

교육언론들이 정부의 간섭이나 예산을 지원받지 않고, 독립된 튼실한 경영으로 비판적 메스 등 제몫을 다할 때 교육발전이 담보된다. 최소한 독자들에게 정보 충족과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교육언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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