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원인
착각(?)의 원인
  • 최고은
  • 승인 2010.11.0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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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시대의 책 Mechanica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것으로 다음과 같은 역설이 실려 있다고 한다. 큰 원과 거기에 붙어있는 작은 동심원을 동시에 굴리면, 둘 다 똑같은 거리를 움직이게 되어 두 원의 원둘레의 길이가 같아지는 엽기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역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처음 알려진 것으로 종종 아리스토텔레스의 바퀴라고 인용되고 있다. 이 논리가 참이면 ‘모든 원둘레의 길이는 같다’ 즉, 다시 표현하면 ‘모든 원의 반지름은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므로 분명히 추론의 과정에 모순이 있을 것이다. 마치 두잔의 켭에 있는 물을 큰 그릇에 담으면 한 잔이 된다. 따라서 1+1=1이 성립된다. 이는 물의 부피(1+1)와 그릇의 개수(=1)을 혼동하는 데에서 일어난 모순된 결과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결과다. 하지만 왜 이런 이상한 일이 생길까? 착각(?)의 원인은 일대일 대응 때문이다. 분명히 두 원 위의 점들이 일대일 대응을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원둘레의 길이가 같지는 않다. 즉, 길이라는 것은 점의 개수(농도)와는 상관이 없다. 다시 말해, 작은 원의 원둘레와 선이 일대일 대응하는 것 때문에 마치 그 두 원의 길이까지 같아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작은 동심원은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작은 원이 미끄러지지 않고 굴러가면 원둘레와 길이가 같을 테니, 당연히 작은 원이 미끄러지며 굴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작은 원은 회전 속도에 비해 진행 속도가 빠르다. 정말로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다. 이런 걸 직관적으로 느끼려면 원 위의 한 점이 그리는 자취를 생각하는 게 쉬울 것이다. 머릿속에서 원을 굴려 보자. 큰 원 위의 한 점이 그리는 자취인 사이클로이드와는 달리, 작은 원 위의 한 점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가면서 매끈한 곡선을 그린다. 하이포트로코이드라고 불리는 이 곡선은 작은 원이 그리게 되는 사이클로이드를 당겨서 늘인 꼴이다. 두 원에서, 원이 구르기 시작하면서 작은 원위의 점이 휙 앞으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R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재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갈릴레오에 대한 교황청의 재판일 것이다. 그 내막을 알아보자.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1564년에 피사(Pisa)에서 플로렌스의 가난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 의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피사 성당의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청동 등불이 진동 폭과 무관한 주기로 앞뒤로 진동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관심을 수학으로 돌렸다. 갈릴레오는 25세 때 피사대학의 수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낙하 물체의 공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은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갈릴레이가 낙하 실험을 했다는 전설로 유명한 피사의 사탑. 전설이 사실인지는 논란이 있다. 그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서 하나가 다른 것의 열 배 무게인 두 금속 물체를 떨어뜨렸는데, 두 물체는 같은 순간에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눈으로 확인한 그의 실험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가르치는 다른 교수들의 믿음을 깨지는 못했고, 결국 갈릴레오는 그들과의 마찰로 1591년 피사 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했다. 그런데 오늘날 갈릴레오가 실제로 이 실험을 했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어째든 그 이듬해에 파두아 대학의 교수로 임용된 그는 이 대학에서 거의 18년 동안 실험과 강의를 하며 명성을 쌓아갔다. 갈릴레오는 이런 발견들을 1632년에 두 가지 주요한 체계(the Two Chief Systems)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표했고, 이 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옹호하고 있던 교회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1633년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결국 그의 발견들을 철회한다고 선언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갈릴레오가 이 재판에서 자신의 발견들을 철회하고 재판장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갈릴레오가 교회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은 지 347년이 지난 1980년에 로마 교황청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소집으로 갈릴레오가 이단이라는 유죄판결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교황은 1982년 10월 갈릴레오의 교적을 공식적으로 회복시켰고, 13년에 걸친 연구 끝에 1992년에 교회가 갈릴레오를 비난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선언했다. 이로서 모두 359년에 걸친 재판은 갈릴레오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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