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의 고슴도치는 정세균 자신이 아닐까?
정세균의 고슴도치는 정세균 자신이 아닐까?
  • 박기홍
  • 승인 2010.11.02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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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의 고민이 상당히 깊은 것 같다. 그는 지난달 29일 도의회 출입기자들과 모처럼 함께했다. 10.3 전당대회에서 동메달에 그친 충격이 상당히 컸던 모양이다. 그는 “전대를 통해 많이 배우고 느꼈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손 대표나 정동영 최고와 비교할 때 대의원 투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여론조사에서 뒤졌다. 후발주자로 나섰던 만큼 대중성이 떨어졌다. 이의 보충이 숙제로 남았다”.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인기영합적인 포퓰리즘을 동원할 생각은 없다. 신뢰 없는 정치는 곧바로 외면당한다. 대중성 확보, 진정한 소통으로 신뢰를 쌓아가겠다”.

정 최고는 이날 의미 있는 말을 많이 남겼다. “정세균식 새로운 정치를 선보일 것”이라거나, “(대권에) 훈련이 충분히 된 사람”이라는 어록에선 강한 권력의지도 엿보였다. 정 최고는 2년 넘게 풍찬노숙의 야당 대표직을 맡아왔다. 대중성 고민은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물었더니 “그동안 개인의 정치는 소홀히 해왔다. 대중성 확보에 내 스스로 게을렀던지, 부족했던지 그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물었다. “(대중성 확보에) 게을렀다면 부지런히 뛰면 될 것이고, 부족했다면 채워야 할 것 아닙니까. 어떻게 뛰고 채우려 합니까?”. “글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중성’과 관련한 대화는 이 정도에서 끝났다. 정 최고의 고민을 종합하면 이렇다. 2012년 총선과 이후의 대권에 대해 대망을 꿈꾸며 정치적 향후 진로를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는데, 결정적으로 대중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인기에 연연하는 치졸한 정치는 하고 싶지 않다. 뭔가 채울 것이 있는데, 그게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대충 이런 고뇌다.

정 최고는 반듯한 정치인이다. 항상 얼굴엔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파괴력 있는 정치인의 면모를 보여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이런 그가 탤런트나 할 법한 대중성을 고민하다니. 그는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헌신의 리더십’을 강조해온 사람이다. 독목불성림(獨木不成林). 홀로 서 있는 나무는 결코 숲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로, 정 최고가 희생과 헌신의 자세를 언급할 때 쓰던 말이다. 대의를 위해 자아를 죽였는데, 그 자아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정치인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과감히 ‘대중성의 유혹’을 떨치면 어떨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연초 지지율이 불과 2%였다. 대중성과 거리가 멀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철학과 신념이 청와대로 밀어넣은 동력이었다. 정세균다운 면모를 더 강화하는 것, 그것이 정세균만의 고슴도치를 키우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고슴도치는 위기 때 몸을 말아 자신만의 ‘필살기’로 대응한다. 제 아무리 교활한 여우라 할지라도, 천하를 호령하는 사자도 두렵지 않다. 정치의 정글에서 정세균의 고슴도치는 정세균 그 자체가 아닐까. 그는 10년 전인 2001년 봄에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정세균이 바라보는 21세기 한국의 리더십’이란 책이다. 책에서 그는 “21세기의 바람직한 지도자형은 민주적 리더십이고, 이는 자칫 여론 추수형 리더십과 동일시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 스스로 대중성을 경계하지 않았던가.

<박기홍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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