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마의 추측
페르마의 추측
  • 김은희
  • 승인 2010.10.2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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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식 x+y=z 를 만족시키는 자연수 x, y, z의 해는 (1, 2, 3), (2, 2, 4), (3, 4, 7)..... 무수히 많다. 그리고 x²+y²=z²을 만족하는 자연수도 (3, 4, 5), (5, 12, 13), (6, 8, 10), (9, 12, 15)... 등 무수히 많다. 그렇다면 x³+y³=z³, x⁴+y⁴=z⁴.... , xⁿ+yⁿ=zⁿ 을 만족하게 하는 자연수의 쌍(x, y, z) 의 값은 존재하는가? 라는 자연스러운 정수방정식의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20년 전만 해도 이 답은 ‘모른다’ 였지만 이제는 이 답은 ‘아니오’이다. 이것을 좀 더 일반적으로 설명하면,

‘2보다 큰 자연수 n 에 대하여 방정식 xⁿ+yⁿ=zⁿ을 만족시키는 자연수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의 정리를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1605)의 추측(Fermat's Conjecture) 또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라고 한다.

페르마는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지방의회 의원과 변호사로서 생을 마감한 매우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서, 그는 오직 취미와 여가활동으로 수학을 연구하였으며, 살아있는 동안, 그는 그의 연구결과를 단 한 번도 발표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다만, 취미로 연구된 결과들을 페르마가 죽은 지 5년 후인 1670년에 그의 아들에 의해서 출판되면서 그의 업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이 문제는 그가 즐겨 읽던 디오판토스의 산학이란 책의 번역판 책갈피의 여백에 적어 놓으면서 ‘나는 이미 이 문제의 감탄할 만한 증명방법을 발견하였지만, 여백이 너무 적어 여기에 쓸 수 없다.’ 라고 기록해 놓았다고 한다. 페르마가 실제로 이 문제의 확실한 증명을 했는지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 시대 이래로 명석하고 뛰어난 많은 수학자들이 이 문제를 풀려고 많은 시도를 했으나, 번번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상당한 진전을 이루어 연구의 부산물로 얻어진 여러 가지 결과들이 수세기 동안 나오게 되었다. 한 예로, 오일러는 x³+y³=z³의 자연수의 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였고, 페르마 자신이 x⁴+y⁴=z⁴의 자연수 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발표하였으며, 1825년 르장드르와 디리클레는 x5+y5=z5의 자연수의 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1839년에는 라메라는 수학자가 x7+y7=z7의 자연수의 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1943년에는 독일의 수학자인 쿠머(E. Kummer)는 자신이 페르마의 정리를 완벽하게 증명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 증명에는 실수가 있음이 밝혀지면서부터, 이 문제는 가장 많이 잘못되었던 증명으로 특징 지워졌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독일의 수학자 볼프스켈(Wolkskechl)은 1908년 이 문제의 완벽한 증명을 100년 이내에 최초로 하는 사람에게 상금으로 10만 마르크를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 후 컴퓨터의 등장으로 n이 10만 미만의 자연수인 경우에 페르마의 추측이 참인 것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이런 오랜 과정을 걸쳐오면서 350년 이상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매달렸지만, 오리무중에 있다가 1994년 미국의 수학자인 엔드류 와일즈(Andrew Wiles, 1953-)교수에 의하여 이 정리가 증명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페르마 정리를 안 것은 10살 때였으며, 그가 수학자의 길을 지망한 것도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해 보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실제로, 1993년 그의 나이 40세 되던 해에 6월 23일,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의 뉴턴 연구소에서 행한 강연회에서 와일즈는 자신이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게 되었음을 발표했다. 그 강연 후 그는 논문의 검토를 몇 명의 신뢰할 만한 전문가들에게 외뢰했다. 그러나 몇 개월 후에 그의 논문에는 결함이 있음을 발견되었고, 그해 12월 와일즈는 자신의 증명과정에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 후 1994년 1월부터 와일즈는 테일러라는 동료와 함께 전에 발표한 논문의 결함을 수정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으나, 여름까지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드디어 때는 왔다. 1994년 9월 19일 와일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여 해결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여, 자신의 논문을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수학논문지인 Annals of Mathematics 에 투고하였다. 그래서 1995년 2월 13일 Annals of Mathematics 편집위원회는 와일즈의 증명이 틀림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이를 매스컴에 공표하였으며 그해 6월 이 두 편의 논문만이 실린 Annals of Mathematics 잡지가 발행되었다. 이렇게 하여서 360년동안 이른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도는 페르마의 예상이라고 불려오며 많은 수학자들의 꿈이었던 이 문제는 그 최종 해결에 이른 것이다. 이 문제를 기하학적으로 설명하면, 이 2보다 큰 자연수일 때, 곡선 +=는 좌표축을 제외하고는 유리수좌표를 갖는 어떠한 점도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 두 가지는 이렇게 유명한 문제를 해결하고도 40세 미만에만 수상하는 필즈메달을 받지 못하였다는 사실과, 이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 이라는 방정식을 만족하는 2보다 큰 자연수 , , 와 , , 가 존재하는가? 를 묻는 아직까지 손도 못 대는 오리무중의 문제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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