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채 남원문화원 원장>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이병채 남원문화원 원장>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 이수경
  • 승인 2010.10.2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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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뭐 그리 중요하길래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할까?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처럼 움직이는 시대일수록 문화다양성이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문화 다양성은 일류가 지구상에서 공존, 공영 할 수 있는 밑거름이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더불어 살아갈 수가 없다. 지금은 한국인들에게 잊혀진 사건하나를 다시 되새겨 보면 문화의 중요성과 힘이 어떠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사건은 1997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캄보디아 ‘훈 할머니’의 고향 찾기 과정이다.

훈 할머니는 16세기경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또다시 머나먼 이국땅 캄보디아에서 한평생을 살았다. 할머니는 이순이(李順伊)라는 자신의 이름조차도 모르고 고향마을도 모르고 한국말도 하지 못했다. 오직 한국인이라고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리랑’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한국인 이라고 주장하고 고향을 그리워했다. 이런 기막힌 사실을 한국인 현지 사업가가 언론에 제보하므로서 화제가 되었다.

언론에서 훈 할머니의 고향찾기를 시도했지만 할머니의 설명만으로는 구체성이 없어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떤 기자의 노력으로 훈 할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한국인이라고 제시한 세 가지는 한국문화 요소였다. ‘비녀, 다듬이, 방망이, 단오날 그네뛰는 장면’의 사진이었다. 다른 외국인은 비녀와 그네 뛰는 장면에 대하여 알지 못했지만 훈 할머니는 달랐다. 비녀를 보고 금방 머리채를 두 손으로 모아서 쪽을 지어 꽂는 시늉을 하였다. 다듬이 방망이를 보고서도 역시 두 손으로 다듬이질 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네뛰는 훈 할머니는 쉽게 한국인으로서 판정되어 국가차원에서 그를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로 규정하고 훈 할머니 귀환을 적극 주선한 바 있다. 유전자 감식을 통해 경남 마산시 진동면이 고향으로 밝혀져 1998년 5월 영구 귀국하였지만 향수병 때문에 그해 9월 다시 캄보디아로 되돌아갔다.

훈 할머니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문화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50년 이상 긴 세월 동안 이국땅에서 비참하게 생활하면서 이름도, 고향도 한국말도 잊어버렸을지언정 자기 몸에 체화된 한국문화를 잊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문화는 이처럼 사람의 뇌리와 뼛속에 녹아들어 있는 집단 정체성의 핵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토록 할머니가 그리운 고향 한국에 영구 귀국하였으나 4개월정도 살다가 향수병에 시달리다가 캄보디아로 되돌아간 것은 자신이 본래 한국인이었음에도 그래서 한국에서 살고 싶었음에도 캄보디아에서 50년 이상을 살다보니 캄보디아 생활에 익숙해져서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곤란했던 것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한국인의 의식을 가지고 이국땅에서 살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캄보디아의 문화에 젖어 살다보니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기가 어려웠고 캄보디아에 대한 향수가 생겨났던 것이다.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혈통보다는 평소 더불어 살던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체화된 삶의 방식과 준칙이 훈 할머니를 캄보디아 인으로 만들어 버렸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문화는 범과 제도보다 우선’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화가 진행 될수록 각 민족별 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서로의 문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 옳다. 그렇지 않으면 문화 다양성도 훼손될 뿐만 아니라 특정 민족에게 이질적인 문화가 급속하게 섞여서 생활이 불편해질 수 밖에 없다. 말하자면 강대국 중심의 혼성문화, 퓨젼문화가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국가별, 민족별, 문화 정체성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나라에서도 지역별 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과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한국사회처럼 수도권 중심의 문화가 한국사회 전역을 휩쓸어 버리고 지역문화의 정체성은 매몰되어 버린다. 여러지역 사람들이 나름의 ‘색깔’과 ‘개성’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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