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꿈마저 양극화되는 사회
아이들의 꿈마저 양극화되는 사회
  • 김흥주
  • 승인 2010.10.20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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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흔히 세 가지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째, 우리 아이가 천재일지 모른다는 환상이다. 어릴 적 자그마한 행동도 부모들에겐 환희의 대상이 된다. 커가면서 조금씩은 약해지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만큼은 언젠가 최고가 되리라는 기대를 놓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능력에 맞지 않는 ‘천재되기’를 강요받는다. 사교육 천국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둘째, 우리 아이가 노력 ‘만’ 하면 대한민국 일류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이다. 천재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은 뒤처지지만 노력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지난 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수직 상승한 재벌들의 신화를 끊임없이 들려준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 삼성을 일구고, 현대를 일구고, 대통령도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아이들의 꿈은 분명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환상이다. 거위의 꿈처럼 노력만 하면. 그래서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고 쉼 없이 이야기하고, 야망을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그런데 최근의 한 보고서는 이러한 부모들의 기대가 말 그대로 ‘환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청소년의 가정환경이 진로선택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진로는 그들의 원대한 꿈과 개개인의 노력여하 보다는 가구소득이나 가구자산 같은 부모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로는 두 가지다.

첫째, 부모의 학력격차가 아이들의 역할 모델의 차이를 가져오고, 이것이 진로선택의 차이를 가져오는 방식이다. 부모들의 삶의 방식이 환경요인이 되어 아이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가정의 소득격차가 문화생활 및 사교육 격차를 가져오고, 이것이 진로선택의 차이를 가져오는 방식이다. 아이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학교와 진로선택에 더 결정적이라는 이야기다.

아이들의 진로선택 차이는 결과적으로 직업 차이와 근로 소득의 차이로 이어지고, 이것이 삶의 질과 생활기회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들의 자녀들은 또 다시 구조화된 차이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소위 부의 세습, 빈곤의 세습이 제도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 고리는 아이들의 ‘꿈’마저도 양극화시키고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전국 56개 초ㆍ중ㆍ고교 3만 7,258명의 장래 희망을 조사해 분석한 <소득별, 학교별 학생 장래 희망 조사 보고서>는 아이들의 꿈이 양극화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외국어고 학생들은 75.6%가 대기업 간부나 고급 공무원, 판검사나 의사 등의 고소득 전문직을 꿈꾼 반면, 일반고 학생들은 그 절반가량인 38.2%만 이런 직업을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특성화고(옛 실업계고) 학생들은 고소득 전문직을 꿈꾸는 비율이 3.4%에 불과했다. 반면에 소규모 자영업이나 요식업, 비숙련 기술자 등의 중하위 직종을 꿈꾸는 비율은 78.7%나 됐다.

아이들의 꿈이 양극화되는 시점은 자아 정체성이 발달하는 중학교 이후부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자동네인 강남ㆍ서초ㆍ송파구와 상대적으로 서민층이 많은 지역인 구로ㆍ금천ㆍ관악구 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분석한 결과 고소득 전문직 희망 비율이 초등학생인 경우 10.40%p의 차이가 났지만 중학교로 올라가면 18.31%p로 높아졌다.

상승이든 하강이든 사회이동이 제도적으로 가능한 사회를 개방형 사회(open society)라고 한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공정한 사회가 바로 이런 사회다. 그러나 부모의 경제력이나 가정환경이 아이들의 진로선택이나 장래 희망을 좌우하는 사회는 사회이동이 제도적으로 막혀있는 폐쇄된 사회(closed society)다. 그들만의 리그가 가능한 구별짓기 사회. 이런 사회는 전혀 공정하지도 않고, 공정할 수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승할 수 없고, 사회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을 때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아이들이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도 힘이 될 수 없는 부모들의 심정은 어떠할 까? 이를 정책과 제도로 어루만져질 수 있을 때 공정한 사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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