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값 폭등과 정부의 미봉책
배추 값 폭등과 정부의 미봉책
  • 홍요셉
  • 승인 2010.10.12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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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추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가뜩이나 어려운 국민들의 살림을 팍팍하게 만들었다. 시장에서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 5천원이나 나간다는 것을 언제 상상이나 했겠는가. 2년 전 배추 값이 폭락해 밭 전체를 굴삭기로 뒤집던 모습이 생생한데 식당에서조차 김치구경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배추 값 폭등 소식을 듣고 “배추가 비싸니 내 식탁에는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올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이 궁핍했던 보릿고개 이야기를 듣고 “밥 없으면 라면먹지 왜 굶어”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말뜻의 진위가 어떠하건 이대통령이 양배추 김치를 드신다고 배추 값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배추 값 폭등의 원인으로 정부와 여당은 올해 폭염, 폭우 등 이상기후로 인한 흉작을 들고 있는 반면 야당과 농민단체는 4대강 사업으로 채소재배 면적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환경변화만 배추가격 폭등을 일으킨 범인일까 의구심이 든다.

서울 가락동 시장에서 배추 한포기가 만원을 넘을 때 산지가격은 천원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배추의 경우 대부분 ‘밭떼기’방식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정작 농민들이 손에 쥐는 돈은 배추가격의 폭등과 무관하다 할 정도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배추를 대량으로 사재기하는 유통업자가 있다”면서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가 배추 중간유통“이라고 지적했다. 여러중간업자가 개입해 이윤을 남기는 고질적인 농산물 유통과정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원인으로 농민들의 배추재배 포기를 들 수 있다. 해마다 배추가격이 높아도 3천원 미만인데 비료와 자재비 등은 해마다 오르면서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결국 이번 배추 가격 폭등은 단순히 물가를 잡는다고 농산물을 통제한 정부의 책임도 상당부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정부가 부랴부랴 배추 가격 안정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이 대책이 미봉책에 불과해 농민과 소비자들을 다시 한 번 혼돈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는 점이다.

정부가 내놓은 첫 대책은 중국산 배추와 무의 수입. 이를 위해 올 연말까지 이들 품목에 대한 관세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기종 배추 27%, 무 30%씩 적용하던 관세가 사라지면 중국산 농산물은 가격경쟁력을 더 갖고 대거 수입돼 판매될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전북도 농업기술원과 익산 농업기술센터 등에 따르면 고창, 김제, 부안 등 도내 가을 김장채소 주산단지 5곳의 생육상태가 아주 양호해서 올 가을 김장대란은 없을 것이란 판단을 내놓았다. 이러한 김장채소의 작황은 전국적인 경향이다.

결국 중국산 배추가 가득 들어오면서 도리어 우리 농민들이 재배한 배추 등 김장채소가 제 값을 못 받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 예상된다. 또 중국산 식품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종종 불거지는 점을 상기할 때 수입산 채소류에 대한 검수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경제적인 약자들이 값이 싼 중국산 채소를 상대적으로 구매할 여지가 많은 상황에서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젠 아예 국민을 패닉상태로 몰아넣는 일이 될 것이다.

과연 무엇이 부족하다고 무조건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능사일까. 배추파동 뿐만 아니라 최근 정부의 정책, 특히 농업관련 대책은 번번이 시장기능을 왜곡하고 손쉬운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애시당초 정부가 농산물의 가격변동 특성을 파악하고 미리 대비했어야 한다. 그리고 사후약방문이라 하더라도 주먹구구식 대처는 결국 또 다른 화를 부른다. 국민식탁 만큼은 제대로 지켜주는 정부, 근본적인 농업대책을 강구하는 정부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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