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 20년...통합을 위한 과제와 교훈
독일통일 20년...통합을 위한 과제와 교훈
  • 최낙관
  • 승인 2010.10.0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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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마지막 국가원수였던 에곤 크렌츠는 1989년 11월 9일 동독과 서독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장벽을 제거하겠다고 전격 발표했고 그날 밤 11시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Berliner Mauer)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이후 동독과 서독은 1년 동안의 협상과 논의 끝에 결국 1990년 10월 3일 통일에 합의했다. 역사적인 독일통일은 유럽에서의 동서냉전의 종식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의 공존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독일통일 이후 유럽은 경제통합을 거쳐 정치통합과 문화통합으로 나아가고 있다. 통독 2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독일은 정치·경제적인 외적 통합의 측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2009년에 독일 정부가 발간한 ‘통일 백서’에 의하면 옛 동독 지역의 경제 상황은 통일 이후 상당한 정도로 향상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통일 이전 서독의 30% 수준이던 동독의 GDP는 71% 수준까지, 생산성은 과거 20~25%에서 79%까지 높아졌고 2000~2008년 연평균 GDP 성장률은 동독 지역이 14.1%로 서독의 9.1%를 앞서고 있다. 이러한 가시적 변화는 통일 이후 독일 정부가 동독 지역 발전을 위해 매년 GDP의 3~4%(약 1000억 유로)를 투입해 온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의 이면에 독일은 사회ㆍ문화적인 내적 통합을 위한 아직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통합의 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문제들, 예컨대 엄청난 통일비용과 높은 실업률, 심리적인 갈등, 복지개혁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가중되고 있다. 독일통일 20주년을 맞는 현 시점에서 볼 때, ‘머릿속의 장벽’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독일에서 가장 큰 일간지인 ‘쥐트도이체 차이퉁’(S?ddeutsche Zeitung)지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는 동독지역 주만들은 단 11%에 불과하고 42%는 불만을 느끼고 있으며 심지어 10% 응답자는 옛 동독으로 회귀하기를 바란다고 보도하고 있다. 즉 오늘날 동독지역 주민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근대화의 희생자”, “통일과정의 패배자”이며 통일독일의 “이등국민”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러한 심리·사회적 이질감은 구동독 시절의 삶을 동경하는 ‘오스탈지아’(Ostalgie)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통일은 환상이 아닌 현실이다. 준비 없는 통일은 그 자체가 고통일 수 있다. 비록 통일이 되었지만 가난하고 게으른 동독놈들(Ossi), 거만하고 역겨운 서독놈들(Wessi)이라는 심리적 차별과 반목이 통일독일 내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통일을 넘어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독일의 경험은 통일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큰 우리 대한민국에 매우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렇다면 ‘차이’를 인정하는 ‘통합’의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과 조건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독일통일의 초석을 놓았던 전 독일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의 어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바로 다음날인 1989년 11월 10일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은 이제 함께 자라날 것이다”고 통일독일의 미래를 제시하며 이를 위해 “지금까지 우리와 분단되어 살아온 동포들의 자존심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까지 이 발언은 통일 후 통일독일이 겪게 된 사회·문화적 갈등의 원인과 본질을 예견한 탁월한 진단이었으며 현재의 독일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히 제시해 주고 있다.

통일의 진정한 의미는 체제경쟁에서 승리하여 분단된 반쪽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기반 위에서 함께 자라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 있다. 준비 없는 체제 통합은 ‘통일 후유증’을 가중시키고 모두에게 ‘통일부담’을 안겨주는 게임일 수밖에 없다. 이는 분단 상태에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후발주자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진지함이 요구된다. 따라서 통일에 대한 필요성과 정당성에 동의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불필요한 정쟁과 이념논쟁보다는 ‘배려와 존중’에 입각한 범사회적인 소통과 대안의 장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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