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군 전북대 겸임교수> 추석 단상
<전성군 전북대 겸임교수> 추석 단상
  • 이수경
  • 승인 2010.09.15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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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 온지 6개월이 되었다. 억눌렀던 마음은 고향 풀벌레의 화음만으로도 술술 풀리는 실타래처럼 가볍기만 하다. 숲과 농원을 껴안은 고향마을엔 잠시 잃어버렸던 고향의 향수를 다시 피어오르게 하고 있다.

어느덧 한가위,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사람들은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오랜만에 무공해 새소리가 들려온다. 멈춰서있던 하얀 구름도 움직이기 시작하고, 텅 빈 도로는 벌초행렬에 나선 승용차들 소리에 정적이 깨어지고, 검푸른 풀벌레들이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귀성객들의 마음을 출렁이게 하고 있다. 텅 비었던 고향마을엔 모두들 제자리를 찾느라 분주하기 그지없다. 모처럼 고향마을에 오케스트라가 연주되고 있다. 풀벌레 소리, 가을 새소리, 승용차의 경적소리, 진정 그 추억과 세월을 지켜준 내 고향 품속은 포근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내 고향이 새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불임의 땅이 돼 버렸다. 아예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마을이 대다수다. 그래서 어느 마을에 아기가 태어나면 온 마을에 잔치가 벌어지는 세상이 됐다. 오죽했으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야 그 지역 땅값이 올라간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게다가 아이들은 부모님의 고향보다는 놀이공원과 컴퓨터 게임에 더 관심이 있다. 갈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퇴색돼가는 오늘날의 추석 풍속도가 고향 마니아들에겐 더없이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고향을 찾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서러운 추석, 낯 설은 한가위’가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이다. 그래서 내 고향 정읍이 낯설고 서럽기만 하다.

지금은 농촌의 젊은 세대가 도시로 빠져나가 버림으로써 이러한 농촌의 역할이 많이 퇴색돼버리긴 했지만 아직도 고향 농촌을 지키고 있는 부모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명절 때만 되면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는 아름다운 전통 계승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다시 고향으로 회귀하려는 속성을 나타내게 되는데 이제는 우리 농촌이 단순한 농산물의 생산 공간으로서의 농촌이 아니라 도시민의 건전한 휴가공간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노후에 아늑하고 편안한 삶을 즐기면서 더욱 생산적인 여생을 보낼 수 있는 휴양 및 정주공간으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고향의 흙은 우리들 생명의 젖줄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일구어 놓은 고향 밭흙을 맨발로 접촉해 보라. 그리고 흙냄새를 맡아 보라. 그것은 순수한 생의 기쁨이 될 것이다.

낯설고 서러운 땅이 되어가는 내 고향에 며칠만이라도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게 하자. 밤이면 막걸리에 취해 동구 밖에서 고성방가를 해댄들 내 고향 정읍의 적막함보다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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