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적인 육선형과 파스칼
신비적인 육선형과 파스칼
  • 김장천
  • 승인 2010.09.0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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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신학자인 블레스 파스칼은 16세에 이미 원추곡선 안에 있는 대변의 3쌍의 교점이 일직선상에 있다는 신비적인 육선형(The Mystic Hexagram)을 증명하였다.

파스칼은 1623년 프랑스의 오베르뉴 지방의 클레르몽페랑에서 태어났다. 3세 때 어머니와 사별하고 소년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왔다. 학교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독학으로 유클리드기하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16세에 원뿔곡선 시론을 발표하여 당시의 수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사영기하학에서 나오는 '파스칼의 정리'는 이 시론에 포함되어 있다.

1640년 아버지와 함께 루앙으로 옮겨, 아버지가 하는 세무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계산기를 고안하여 2년만인 1642년 성공하였다. 루앙에 있을 때 얀선주의의 신앙혁신운동에 접하여 최초의 회심을 경험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토리첼리의 실험을 행한 이래, 진공에 관한 문제, 유체정역학에 관한 문제에 흥미를 가졌고, 마침내 진공에 관한 신실험을 발표하였다. 1647년 질병의 치료를 위해 파리로 돌아와, 그 무렵 귀국 중에 있던 데카르트의 방문으로 서로 만나게 되었다. 이듬해 처남 페리에에게 부탁한 퓌드돔 산정의 실험에 의해 대기의 압력을 확인하였다. 1651년 아버지가 죽은 후 여동생 자클린이 포르 루아얄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과는 달리, 파스칼은 로아네스공, 슈발리에 드 메레 등과 친교를 맺고 사교계에 뛰어들어 인생의 기쁨을 추구하였다. 노름에서 딴 돈을 공정하게 분배해주는 문제에서 확률론을 창안하여, 수삼각형론 및 그 부대논문을 썼다. 파스칼은 이 논문으로 수학적 귀납법의 훌륭한 전형을 구성하였으며, 수의 순열·조합·확률과 이항식에 대한 수삼각형의 응용을 설명하였다. 또 물리실험의 결과를 유체의 평형 대기의 무게라는 두 논문으로 정리하였다. 초등 물리학에서 나오는 ‘파스칼의 원리’는 유체의 평형 속에 포함되어 있다.

1654년 여름부터 사교계에 대한 혐오감이 점점 싹텄으며 11월 23일 깊은 밤에 기도 중 결정적인 회심의 환희를 체험하고 포르 루아얄 수도원의 객원이 되었다. 그는 수녀인 여동생 자클린에게서 입은 감화가 컸다고 한다. 죄인의 회심에 대하여, 초기의 그리스도 신자와 오늘의 그리스도 신자의 비교 요약 예수 그리스도전 등의 소품은 바로 그 무렵의 저작이다.

당시 프랑스의 가톨릭교회 내에서는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예수회와 포르루아얄에 모인 얀선파 사이에 신학상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파스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논쟁에 말려들었다. 그는 시골 친구에게 부치는 편지(프로뱅시알)라는 제목의 서한체의 글을 익명으로 속속 간행하여 예수회 신학의 기만을 폭로하는 한편, 그 오만불손한 윤리를 공격하였다. 1656년 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8편의 서한문을 발표하였다. 파스칼은 이 서한문에서 구사한 경쾌하고 솔직한 표현에 의해 프랑스어에 새로운 문체를 도입한 결과가 되었다.

1658년 우연한 동기에서 사이클로이드 문제를 해결하고 적분법을 창안해 냈다. 사이클로이드의 역사, 삼선형론, 사분원의 사인론, 원호론, 사이클로이드 일반론 등 일련의 수학논문 속에 그 이론이 나타나 있다. 그 외에도 기하학적 정신에 대하여, 설득술에 대하여, 질병의 선용을 신에게 비는 기도, 등의 소품을 쓴 것도 그 무렵의 일이다. 그리스도교의 변증론을 집필하기 위하여, 단편적인 초고를 쓰기 시작하였으나 병고로 인하여 완성하지 못한 채, 39세로 생애를 아깝게 마쳤다. 사망 후 그의 근친과 포르루아얄의 친우들이 그 초고를 정리·간행하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팡세의 초판본(167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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