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부시맨
스마트폰과 부시맨
  • 김윤태
  • 승인 2010.09.0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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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 이 말은 브라질 중부 아마존 정글 속에서 살아가는 피다한 원주민들의 저녁인사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다니엘 에버렛이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피다한 부족의 삶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소개한다. 그들의 언어에는 '미래', '걱정'이라는 단어가 없다. 오로지 '현재' 속에만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소유', '믿음',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다. 언제나 만족을 느끼며 유쾌하게 살아간다.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자유롭고 행복한 피다한 사람들의 삶에 매료된 에버렛 교수는 자신이 전도하려던 선교 사역을 포기했다. 피다한 사람들은 오로지 실용적인 유용성만 인정했다. 이들에게는 절대자, 정의로움, 성스러움, 죄악의 관념이 없다. 현대인들이 거의 모두 괴로워하는 걱정, 두려움, 좌절의 느낌을 갖고 있지 않다. 초월적 존재와 보편적 진리를 찾으려고도 증명하려고도 노력하지 않는다. 피다한 사람들의 진리는 물고기를 잡는 것, 노를 젓는 것, 아이들과 웃으며 노는 것, 형제를 사랑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삶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미개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간의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인간 사회는 목축과 농경의 사회, 유목과 농경의 사회, 산업사회로 변화했다. 하지만 사회가 단선적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견해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사회는 엄청나게 다양한 경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인간의 역사가 반드시 나은 방향으로 발전했는지도 의문이다.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생산력의 발전, 노동의 분업, 합리성의 확대와 함께 인간 문명은 지속적으로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불평등의 확대, 사회적 혼란과 전쟁, 인간의 도구화와 같은 심각한 문제점도 만들었다.

인간의 오랜 역사를 보면 현대 산업문명은 아주 최근의 현상에 불과하다. 약 2만년 전 목축과 농경의 사회가 등장했고, 산업사회가 등장한 것은 불과 200년 전이다. 현재 수렵과 채집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인구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25만 명 정도이다. 이들은 사냥, 낚시, 야생식물의 채집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면 컴퓨터, 디지털 카메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우리에 비해 과연 수렵채집사회의 인간들이 더 불행할까?

남아프리카에서 3만년 이상 살고 있는 원주민 부시맨이 있다. 1980년대 영화 <부시맨>에 소개된 후 코카콜라 광고에까지 등장해 널리 알려진 부족이다. 이들은 수렵과 채집 사회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유지한다. 청각, 시각, 방향감각이 놀랄 만큼 정확하다. 동물의 발자국만 보아도 이동경로, 이동시간, 동물의 성별을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시간은 1주일에 고작 6~8시간에 불과하다. 우리는 1주일에 48시간도 모자라 초과수당을 받으며 일하지 않는가? 부시맨의 건강을 보면 일반적인 견해와 달리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종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음식물은 영양가가 높고 의약품이 없어도 60세 넘게 살고 있다.



어떤 사회가 더 발전된 사회인가?



현대 산업사회와 비교할 때, 수렵과 채집의 사회에서는 개인들 사이의 불평등이 거의 없다. 수렵인과 채집인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욕구의 충족을 넘어서는 부의 축적에 관심이 거의 없다. 물질적 부의 차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도 없다. 대부분의 수렵과 채집 사회에는 전쟁이 없고, 부와 권력이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고, 경쟁보다는 협동이 강조되는 사회이다. 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경쟁에 뛰어들고 엄청난 군비경쟁에 돈을 쏟아 붓고 서로 죽이는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과연 현대사회가 수렵과 채집의 사회보다 어떤 점에서 '더 발전된 사회'인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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