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용 전주아중중 교감>선생님께서 계신 바로 그곳이 교단입니다
<김판용 전주아중중 교감>선생님께서 계신 바로 그곳이 교단입니다
  • 한성천
  • 승인 2010.08.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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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김홍식 선생님께!

찌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는 8월의 끝자락입니다. 머지않아 선생님께서 근무하시던 봉남들도 황금빛으로 물들겠지요. 여름이 힘겨웠던 만큼 가을은 더 풍성할 테니까요. 그런데 올 가을은 텅 빈 듯한 가슴으로 맞을 것 같습니다. 평소 교단의 등불처럼 여겼던 선생님계서 정든 학교를 떠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궁벽한 시골 해리중학교에서의 일입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핸드볼 현역 국가대표로 가끔씩 시합이 있으시면 출장을 가시곤 했었지요. 저 같은 사춘기 남학생들에게 선생님은 그야말로 전설이었습니다. 교실바닥 구멍에서 나온 쥐를 슬리퍼를 던져 잡으셨다고 하고, 체육시간에 시범삼아 던진 슛에 핸드볼대가 흔들렸다는 이야기 등 믿을 수 없는 이적이 회자되곤 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자상하셨습니다. 가난해서 개인의 공을 가질 수 없던 시절에 학생들이 원하면 언제든 운동장에서 공을 찰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고, 체육시간마다 저희와 함께 뛰고 달리며 웃고 울었습니다. 또 항상 학생들의 장점을 이야기하면서 꿈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보다는 형처럼 느껴지기도 했었지요.

당당하고 남자다운 모습 때문인지 학교에서 인기 많으셨던 여선생님과 사랑을 키워 결혼하셨다는 이야기가 들렸지요. 모두 ‘잘됐다’ 하면서도 아쉽고 뭔가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두 분 결혼에 대한 최대의 찬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선생님을 따라 교단에 섰지만 소식은 알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만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이 교육전문직을 하면서였습니다. 선생님께서 해양수련원에서 도교육청 장학사로 오셨고, 저 역시 도교육청 장학사로 근무를 할 때이니 사제가 같은 길을 간 것이지요. 도교육청에 계실 때 전북 체육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다가 작은 학교를 자청해 현장으로 가셨습니다.

아름다운 봉남중학교! 선생님께서는 이 학교에 모든 걸 바치셨지요. 교장으로 부임하시고 나서도 저희에게 하셨듯이 학생들의 발을 씻어주고, 생일 파티를 열고, 또 음식을 해 먹이시면서 즐겁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민주적인 학교 운영은 물론, 지역사회와의 원활한 관계로 학교의 외연을 넓히신 경영자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셨습니다. 체육을 전공하셨지만 음악이나 시 등 감성적인 분야에도 관심이 많으셨지요. 늦게 배우셨지만 열정적으로 연마하신 섹스폰 연주로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봉사활동도 하셨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선생님께서는 이제 교단을 떠나십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영원한 선생님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도와서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드는 일이 교육자의 사명이라면 선생님께서는 계신 곳은 어디나 교단입니다. 오늘 비록 떠나시더라도 언제나 초롱초롱 눈빛이 빛나던 제자들을 기억해주십시오. 선생님의 용광로 같은 사랑에 감화 받았다면 1970년대의 해리중 학생이든 2010년대의 봉남중 학생이든 모두 제자로서 존경할 것입니다.

선생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열심히 교단을 일구겠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뜻을 잇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영광된 정년퇴임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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