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당권주자에 듣는다> 정동영 상임고문
<민주 당권주자에 듣는다> 정동영 상임고문
  • 박기홍
  • 승인 2010.08.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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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안세력 거듭나야 정권탈환 가능
민주당은 10월 3일 전당대회를 갖고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최대 관심사는 역시 차기 당 대표다. 현행 당헌·당규대로라면 이번에 새로 뽑히는 당 대표의 임기는 2년이고, 오는 2012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게 된다. 총선 직후 치러지는 차기 대권 후보 경선에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된다. 민주당 당권 주자 ‘빅 3’ 중 누구도 아직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권 경쟁은 한여름 불볕더위보다 더 달아올랐다는 게 정가 안팎의 분석이다. 이 와중에 정동영 상임고문이 지난 21일 정치적 고향인 전주에 내려와 23일까지 3일 동안 머무를 계획이란다. 22일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10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내십니까.

▲우선 폭염과 호우피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수해지역 주민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북의 피해액만 500억 원이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거듭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개인적으론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오랜 친구들과 만나 해묵은 앙금을 털고 회포도 풀었지요.

-민주당 당권 경쟁이 치열합니다. 정 고문께선 집단지도체제 지지 의사 밝혔죠?

▲선당후사(先黨後私) 차원입니다. 당을 위해 어떤 모습이 좋을까, 당의 집권을 위해 유익한 기준이 무엇이냐, 당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등등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민주당이 조사한 결과 당비를 내는 당원의 54.7%가 집단지도체제를 선호하고, 현행 유지는 30.2%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은 당원들 말만 들으면 탈이 날 이유가 없습니다. 당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존중해야 합니다. ‘내 생각은 (당원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독선이요, 실패를 낳습니다. 전당대회 룰을 놓고 유불리를 따지거나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것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당원들이고 당원들의 의사 존중입니다.

(‘집단지도체제’는 한나라당처럼 출마에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고 다수의 출마자를 대상으로 당 대표 경선을 치러 최고 득표자를 당 대표로 선출하고 차점자 순으로 최고위원단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정세균 당 대표의 사퇴 이후 쇄신연대가 동력을 잃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향후 쇄신연대의 진로나 활동 방향은 어떻게 됩니까.

▲앞으로 노선을 바로잡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담대한 진보’가 바로 노선이 될 수 있고, 정권을 잡기 위해선 이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담대한 진보’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무엇입니까.

▲핵심은 ‘민생불안 해소’, ‘삶의 질 향상’이라 말할 수 있지요. 그 방법론으론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을 들 수 있습니다. 830만 명의 비정규직, 600만 명의 자영업자, 400만 명의 농민, 400만 명의 청년 백수 등 2천230만 명의 4대 서민을 위해 보다 낳은 내일을 열어갈 수 있도록, 4대 서민에 희망을 주려면 ‘담대한 진보’로 나가야 합니다. 즉 국민이 명령하는 가치의 방향을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담대한 진보’라 규정하고 그 길에서 저의 새로운 정치인생을 시작하겠다는 것입니다.

-‘담대한 진보’를 위한 정책은 마련하고 있습니까.

▲선진국이 모두 도입하고 있는 ‘사회복지부유세’ 도입을 검토해야 합니다. 여야 인사마다 모두 복지를 얘기하면서 돈이 들어가는 현실은 말하지 않습니다. 여론조사와 전문가 토론을 토대로 할 때, 예금과 주식·부동산 등 각종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가치로 따질 때 30억 원 이상 가진 5만 명의 부유층이 일정부문 부담을 하면 ‘사회복지부유세’ 도입이 가능해집니다.

-어떤 방식입니까.

▲노후연금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지금의 연금은 용돈연금 수준입니다. 부유층이 일정 부담을 해 ‘사회복지부유세’를 도입할 경우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부자가 벤츠를 타고다녀도 존경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식들은 부모님 용돈 주기도 힘들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의 67%가 사회복지부유세 도입에 찬성하고 반대는 16%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나와있습니다. 한 5년 전 통계에선 찬성이 60% 정도였으니 상당히 올라갔지요. 선진국 클럽인 OECD 국가들은 부자 증세로 가고 있습니다. 부자 감세 정책은 180도 잘못된 것입니다.

-당 대표 지지율, 현재 어떤 상황입니까.

▲지지율? 글쎄, 이제 시작해 봐야 알 것입니다. 누구도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으니…. 중요한 것은 여러 변화가 감지된다는 점입니다. 서울과 인천, 부산·울산·경남에서 정동영이 1등이라는 여론조사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3년 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부산과 울산, 경남에서 1등을 하면서 대선 후보로 확정된 적이 있습니다. 영남에서 민주당 당원 역할을 하는 것은 흡사 맨발로 자갈밭을 걷는 것처럼 힘겨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당원들이 정동영을 선호한다는 것, 아마 민주당의 정체성을 중시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일시 가출도 하고 대선 후보로 떨어지기도 하고, 흠이 있고 부족하지만 정동영이 민주당의 장자다, 당을 개혁하려면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보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민주당이 차기 총선에서 승리하고 대선에서 정권 교체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3년 전 대선에서 실패하고 수 만 번 자신에게 물은 질문이 있습니다. 왜 떨어졌을까? 결론은 저 자신의 역량부족이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렇다면 역량이 10배, 20배 됐어도 떨어졌을까 의문이 들더군요. 근본적인 원인은 9개월 후에 깨달았습니다. 세계 경제질서의 심장부 역할을 했던 미국 월가가 금융위기로 허물어지면서 뒤통수를 맞는 충격을 느꼈습니다. 바로 9개월 후에 세계경제의 심장부가 무너지리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런 흐름을 꿰뚫어보지 못한 무능, 나는 과연 무슨 역할을 했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권 가능성은 확실히 있습니다. 다만 민주당이 하기에 달렸지요. 대안세력으로 거듭나면 됩니다. 현재는 대안이 될 수 없거든요.

-대안세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확실히 대안세력이 되려면 간판과 깃발을 혁신해야 합니다. 여기서 간판은 사람이요, 깃발은 노선입니다. 담대한 진보를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신주체세력’,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함께 해온 세력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DJ와 함께 일생을 해온 세력이 지금 민주당의 변방으로 밀려나 있는데, 중심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개방형 민주당, 아래로 문을 열고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100만 실질당원의 민주당을 건설해야 합니다. 지금은 종이당원 시대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손학규­-정세균 당 대표 체제에서 큰 공을 세운 것은 사실입니다. 유감은 당의 뿌리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위원장만 있고 아래가 없다는 말인데, 뿌리를 깊게 해야 민주당이 살 수 있습니다. 지식인 사회, 시민·사회단체 등 각 분야의 사람들에게 문을 활짝 열고 ‘신주체세력’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할 때, 바로 민주당이 대안세력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정치연합 언급도 이런 맥락입니까?

▲우리 정치사에서 정치연합은 곧 지역연합을 의미했지만 지난 지방선거와 재보선의 상황은 단순한 지역연합이 아닌 가치중심의 연합이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이 이미 구축되어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합금 도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난 대선 후보 때 금과 은, 동, 주석, 아연 등을 혼합한 합금 도장이다 해서 사무실로 전달해왔다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좋은 기운을 가져온다며 대선 승리를 기원한다는 좋은 뜻으로 생각하고 곧바로 기억에서 잊었지요. 그런데 3년 뒤인 지금 말썽이 나서 곤혹스럽습니다.

-합금 도장을 직접 받은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렇죠. 사무실에서 연락이 와서 알았습니다. 당시엔 대선 막바지여서 저도 정신이 없었고…

-차기 도당위원장 선출 방식을 놓고 논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보십니까.

▲정해진 절차가 있느니 그대로 하면 될 것입니다. 추대도 좋고 경선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남은 추대로 결정했다고 들었지만, 11명의 의원들이 뜻을 모아야 하겠지요.

-도당위원장 선출도 정동영­-정세균 대리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대리전이라…. 지난 1년 동안 시달렸던 단어입니다. 더 이상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도민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지요.

▲도민들께서 못난 아들에 변함없이 애정과 관심을 쏟아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전북의 아들로서, 도민들의 자긍심에 어긋나지 않도록 바른 정치를 하겠습니다. 도민들이 바라는 민주당, 정권을 획득하고 탈환하는 민주당이 될 수 있도록 몸을 던져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전당대회는 정권을 빼앗긴 이후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계기가 될 것입니다. 도민들의 관심과 애정을 당부드립니다. 거듭 도민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박기홍 기자

<미니 박스>

인간 정동영의 삶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됐던 53년 7월 순창군 구림면 율북리 산촌에서 태어난 그는 전주고를 졸업하고 10월 유신이 선포된 72년에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했다. 유신반대 시위와 구속, 군 강제 징집, 대학 졸업과 MBC 입사, 유명 앵커 활동, DJ와의 만남, 정계 입문. 그는 쉬운 길보다 도전의 험난한 길을 택했다. 그래서 정치 역정엔 굴곡과 부침이 심했다. 96년 4월 총선에서 전국 최다득표 당선의 화려한 출발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헌정사상 최초의 2회 연속 전국 최다득표의 영광으로 이어졌다. 40대 기수론의 돌풍을 일으켰고, 집권당 최연소 최고위원에 등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점에서 시련의 계절은 여지없이 찾아온다. 권노갑 2선 퇴진의 정풍운동이 발단이 돼 여권은 일대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2002년 대선에선 경선 지킴이에 만족해야 했다. 열린우리당 창당과 초대 당의장 당선(2004년), 통일부 장관 발탁 등 상승세를 토대로 2007년 17대 대선의 집권여당 후보가 됐지만 되레 참패의 멍에를 졌다. 2009년 18대 총선에선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해 눈물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에 나섰고, 정계 복귀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얻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기도 했다. 이런 정동영의 근래 행보가 관심을 끈다. 처절한 반성과 함께 ‘역동적 복지’와 ‘담대한 진보’의 길을 묵묵히, 뚜벅뚜벅 걷고 있다. 정가에선 이를 차기 당 대표 출마 발걸음으로 해석한다.

박기홍기자 k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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