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0)의 비밀
제로(0)의 비밀
  • 한성천
  • 승인 2010.08.1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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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화두는 창의성이다. 모방만으로는 모든 형태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과 함께 출발한 수학은 다른 과학과 동떨어진 채 홀로서기만을 고집하는 더 이상 은둔의 과학이 아니다. 왜냐하면 수학은 인류의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최근 컴퓨터 연산법칙인 알고리즘은 아라비아 계산법에서 나온 수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 속에서 영(zero)의 역할은 엄청 크다. 오늘의 수학이야기는 제로처럼 ‘없다’는 뜻을 가진 무(無)를 해부해 보기로 하자. 무가 적어도 상형문자에서 출발한 한자라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무라는 글자는 무엇을 형상화해서 만들어진 글자일까? 예를 들어 우리는 ‘날’을 뜻하는 일(日)이 해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며 월(月) 또한 달의 모습에서 나왔다는 것 정도는 다 알고 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진보해서 우(雨)가 비 내리는 모습에서, 그리고 마음 심(心)이 사람의 심장의 모습을 따서 만들어낸 글자라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한자가 뜻글자로 일종의 상형문자가 진보한 것이라고 하지만 모두가 형상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모든 글자가 모습을 따서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전문가에 맡기고 제로의 비밀을 캐기 위한 첫 관문으로 들어가 보자.

'한자의 재발견'을 쓴 이재황 고전문화연구가에 따르면 무(無)라는 글자는 원래 무당이 양손에 무구(巫具)를 들고 춤을 추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라고 한다. 그의 지적대로 지금의 무(無)의 모자(母字)로 가장 오래된 글자꼴인 갑골문자(은나라 때 거북 껍데기 등에 새겨 점친 것)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운데 사람이 팔을 벌리고 있고 그 팔에 무엇인가 걸려 있는 모습이다. 지금의 무(無)는 참으로 짜임새도 있고 잘 생겼다. 그러나 갑골문자 무를 보면 엉성하기 짝이 없다. 여전히 그림인지 글자인지 분간하기가 어렵지만 글자에서 균형과 조화를 느낄 수가 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왜 없다는 뜻의 무(無)라는 글자가 하필이면 무당이 무구를 들고 춤을 추는 모습에서 나왔는가?” 하고 말이다. 무와 무당의 춤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제로를 상징하는 무(無)가 한자문화권에서 춤추는 무당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자 새로운 발견이다. 어떻게 제로가 춤추는 무당과 같을 수가 있겠는가? 이런 결론을 내려 보면 어떨까? 무당(shaman)은 신의 대리인이다. 그가 무구를 갖고 춤을 출 때 그는 신과 대화한다. 신은 불생불멸의 영원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앞서 밝힌 대로 제로의 무(無)가 영원으로 이어졌듯이, 옛날 한자를 만들어낸 청동기를 넘어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이와 같은 비슷한 개념이 살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무당을 너무 높게 평가한다고 지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4천년, 5천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무당은 전혀 지금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제로는 단순히 그저 ‘없다(nothing)’이다. 그러나 수학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수 제로가 탄생하기까지에는 숱한 세월과 과정이 필요했다. 고고학적 발견처럼 제로의 DNA를 찾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로는 수학에서 중요한 족보 가운데 하나다. 수에는 3가지가 있다. 양수(positive number), 음수(negative number), 그리고 제로다. 숱하게 많은 양수들과 음수들을 가운데에 홀로 우뚝 서서 수들을 저울질하고,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이 제로다. 얼마나 대단한 파워를 가진 수인가? 엄청난 권력자가 바로 제로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그만 더 낮았다면 세계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수학자 파스칼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결코 문학적인 수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파스칼이 셰익스피어처럼 역사 속의 최고 미인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낭만과 로맨스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여자의 아름다움과 자존심을 상징하는 클레오파트라의 코와 세계정치의 변화를 하나의 수학적 도식이나 공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아마도 그는 이미 클레오파트라의 코라는 날갯짓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보려는 오늘날 나비효과를 마음속에 그렸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과거의 역사적인 내용을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연결시키는 일’은 창의적인 시도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비록 무리가 따른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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