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삶, 그 씁쓸함에 대하여
아내의 삶, 그 씁쓸함에 대하여
  • 김흥주
  • 승인 2010.07.14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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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가장 특징적인 세대집단은 한국전쟁이후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들이다. 이들은 잘살기 위해 허리띠도 졸라맸던 6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들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반공교육과 유신교육을 받아야만 했던 70년대였다. 이들의 대학시절은 변혁을 위한 ‘데모’로 시작되어 민주화로 마무리되었던 80년대였다. 그래서 이들은 소위 ‘386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80년대 후반 들어 이들이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온 그들의 이전 삶이 그랬듯이, 이들의 결혼생활은 새로운 모습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특히 386 세대 여성들이 아내로써 살아가는 모습은 이전의 어머니들이 살아온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성평등’의 가족질서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혼란과 반전(反轉) 그 자체였다.

첫째, 아내는 변화하려 하였지만 남편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80년대 민주화 시기, 이들은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여성 집단들이었기에 이전 세대 여성의 질곡어린 삶을 거부하고 양성평등의 가정 질서를 만들려 노력하였다. 가부장적 성역할 분리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회참여와 경제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가정과 직장의 견고한 성차별 구조는 쉽게 변하지 않았고, 남성들도 쉽게 협조하지 않았다. 미국 여성학자 혹실드(Hochschild)는 이러한 상황을 ‘지연된 혁명’이라고 불렀다. 여성들이 변화하여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직장의 남성, 가정의 남성은 전혀 변화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긴장구도를 일컫는 개념이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 아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이러한 지연된 혁명의 연장이었다.

둘째, 부모부양의 책임이 여전이 가족에게, 여성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 붐 세대의 부모들은 이미 고령이다. 노부모를 부양하는 문제는 이들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지워져 있다.

문제는 부양의 주체가 아내이자 며느리라는 점이다. 남편은 여전히 회사인간이고, 가부장적 성역할 분리의 수혜자로 남아있다. 밖에선 큰 변화의 물줄기를 경험한 세대지만, 집에선 굳건한 가부장제의 억압과 굴레를 짊어지고 있다. 아내는 역할 공유를 주장하지만 남성은 ‘도와주는’ 척만 한다. 아내는 시부모뿐만 아니라 친정부모도 부양하려 하지만 남편은 오로지 아들 노릇만 고집한다. 그것도 아내에게 기생해서. 그래서 항상 충돌하고 갈등하고 긴장한다.

셋째, 사교육 천국인 한국사회 특성상 자녀교육 책임을 고스란히 아내들이 떠않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 붐 세대에게 있어 자녀교육은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적극적이고 전략적이며, 희생적이다.

60-70년대 산업화 과정은 역동적 변화와 새로운 전복의 시기였다. 그래서 개인노력 여하에 따라 소위 ‘자수성가’라는 수직적 상승이동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21세기 지식정보 사회에서 상승이동의 가능성은 좋은 ‘학력’밖에 없다. 베이비 붐 세대 아내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녀교육에 목을 맨다. 대부분 고등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녀관리 방법도 안다. 40대 아내들이 남편을 ‘기러기 아빠’로 만들면서까지 미국으로 캐나다로 자녀 조기유학에 따라나서는 이유는 자녀를 관리하기 위해서다.

자녀를 위해 가정을 기꺼이 희생한다. 무리를 해서라도 자식을 제대로 키우겠다는 이들의 열정은 자녀들에게 쏟아 붓는 시간과 돈으로 증명되고 있다. 자식이 성장한 다음에도 계속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체제는 자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지나치게 얽어매는 가정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 그래서 항상 긴장관계를 유지한다. 성과가 있을 경우 긴장관계는 해소되지만, 성과가 없을 경우 자녀의 일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조기유학에서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아이들이 그 예이다.

이렇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치이기 때문에 40-50대 아내의 삶은 혼란스럽다. 양성평등의 중요성은 알지만 현실에서 실현되지는 않는다. 개인적 성취, 여성의 성취의 소중함을 알지만 쉽게 이룰 수는 없다. 그래서 이들의 삶을 빗대어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고도 한다. 위를 보면 끝없이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투명해 보이지만 어느 정도 이상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도록 막혀 있다는 의미다. 해법은 아는데 이룰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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