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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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희
  • 승인 2010.06.2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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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효과와 고문 파문

1971년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심리학 학자인 짐바르도 교수는 훗날 ‘스탠포드 모의감옥 실험’으로 알려진 독특한 실험을 계획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유명한 실험에서 짐바르도 교수는 ‘상황’이 인간의 행동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모의 감옥 실험을 계획한다. 실험의 내용은 간단했다. 먼저 신문에 구인광고를 내 지원자들을 모집한 뒤 경제적 능력, 지능, 건강 조건 등 사회적으로 가장 평범한 비율을 차지하는 지원자를 선출했다. 24명의 실험 참가자가 결정되자 스탠포드 대학교 어느 건물의 지하실에 감옥을 꾸민 후 각 지원자들은 무작위로 교도관이나 죄수의 역할을 맡게 되고, 각자의 역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연구자가 카메라로 지켜보는 것이었다. 예정된 실험 기간은 단 2주. 그러나 누가 그 끔찍한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을까?

결국 실험은 6일 만에 중지되게 된다. 이 가상의 실험은 시간이 가면서 간수와 죄수 역을 맡은 실험자들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마침내 단 하루 만에 진짜 간수와 죄수처럼 행동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간수들은 선글라스를 껴 자신의 눈이 상대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고 똑같은 유니폼을 입어 ‘익명성’을 보장받은 등, 더욱 더 창의적이고 악랄한 체벌을 통해 죄수들을 괴롭히고, 죄수들을(사실은 아무런 죄도 없이 그저 실험에 참가했을 뿐 임에도) 갱생이 필요한 망나니로 취급했다. 죄수 역을 맡은 피실험자에게 나찌의 유태인 수용소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온갖 고문들, 성희롱, 눈을 가리고 잠을 안 재우기, 맨손으로 변기 청소하기, 개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게 하기 등등을 행하게 되고 죄수들은 마치 큰 죄를 지어 온 것처럼 그것을 받아들인다. 감옥의 상황은 더욱 참혹해저 갔지만 실험자이며 관찰자인 짐바르도교수 자신도 동료 여교수가 우연히 실험 장면을 목격하고 울부짖으며 중단을 요청하기 전까지 실험에 대한 도덕적 의심을 가질 못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험 전 심리 테스트에서는 간수와 죄수역의 실험자 모두 착하고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천사에서 사탄으로 변한 타락천사 ‘루시퍼’처럼 착하고 평범했던 사람들이 ‘상황’과 ‘시스템’에 의해서 순식간에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믿기 어려운 결과를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짐바르도 교수는 이를 ‘루시퍼 효과’라고 불렀다. 이런 ‘루시퍼 효과’는 이 실험에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짐바르도 교수는 이 실험이 끝난 후 30년이 지난 어느 날 뉴스에서 자신의 실험에서 보았던 장면과 똑 같은 화면을 보게 된다. 바로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있었던 미군의 포로학대의 사진이었다. 너무 놀란 그는 가해자인 군인들과 면담을 했고 그들 역시 성실한 기독교인이며 가정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가족임을 알게 된다. 그들이 아무런 죄책감이나 죄의식 없이 죄수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하며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 사진들을 보면 누구나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단순히 7명의 나쁜 병사들이 저지른 일에 불과 하다라는 생각(미군 당국의 발표처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짐바르도 교수는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이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개인이 아닌 ‘상황’과 ‘시스템’에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포로를 학대한 개인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원인이 개인에게만 있지 않다는 말이다. 썩은 사과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썩은 상자에서는 사과가 썩을 수 밖에 없다는 그의 생각은 인간의 개인적 자질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처한 사회적 상황이 누가나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악한 짓을 저지르게 만들 수 있으며 이런 ‘상황’과 ‘시스템’을 항상 경계하고 극복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피의자에 대한 고문(?)이 있었다는 국가인권위의 발표와 함께 해당 경찰관 4명이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물론 해당 가해자 개인들의 자질부족과 인권의식 결여도 문제일 수 있으나 이런 후진적 행위의 원인이 죄의식마저 무디게 하는 ‘상황’과 ‘시스템’에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사실 필자는 민주화의 진전 이후 경찰의 인권의식과 대민 서비스가 오히려 공권력의 권위를 염려할 정도로 좋아졌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생뚱맞게 튀어나온 고문 파문의 원인이 절차와 원칙이라는 ‘상식’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슬금슬금 되살아나는 성과와 실적이라는 ‘상황’을 강조하는 과거의 망령 때문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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