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권하는 사회와 건강한 가족의 조건
자살을 권하는 사회와 건강한 가족의 조건
  • 최낙관
  • 승인 2010.06.0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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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에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 소설 “술 권하는 사회”는 암담한 일제 강점기에 지식인들이 주정꾼 노릇밖에 할 일이 없기에 결국 사회가 술을 권한다는 풍자적인 내용으로 피폐해진 사회상을 문학이라는 창구를 통해 토로하고 있다. 2010년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제 우리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를 넘어 ‘자살을 권하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미국의 유력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WP)가 최근 ‘번창한 사회의 우려스러운 경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심각한 자살 문제를 비중 있게 보도한 바 있다. 인구 10만 명당 26명이 죽음을 택한 한국의 자살통계는 미국의 2.5배에 달하고, 그간 문화 속에 자살이 깊숙이 자리 잡은 일본보다도 높은 수준일 뿐만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타전하고 있다.

한국에서 자살률이 높은 이유를 워싱턴 포스트(WP)는 한국사회의 급격한 산업화와 현대화로 한국인들이 경험하는 과도한 수준의 스트레스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른 OECD 회원국들 보다 한국인들은 더 많이 일하고, 덜 자고, 입시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보다도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단순한 통계수치가 아닌 그 내용에 있다. 즉 사회적 존경의 대상인 노인자살이 급증하고 있고 사회적 보호의 대상인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동반자살을 감행하는 사회병리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지난 2008년 10월 배우 최진실이 자살한 뒤 한 달 동안 약 1천 700명이 자살하는 등 일시적으로 자살률이 70%나 증가하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도 우리사회가 얼마나 자살을 권하는 사회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 대한민국에서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자살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를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한 접근은 다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살예방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의 유용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방법과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극복을 위한 출발점은 가족기능의 회복과 건강성의 담보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건강한 가족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인가? 건강한 가족은 예컨대 구성원들이 가족 밖에서 억압당하거나 소외되는 일이 있어도 가족 내에서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고 용기를 주는, 즉 인정과 안정이 살아 숨 쉬는 근원적 집단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저명한 가족학자인 스틴네트와 드프레인(Stinnett & DeFrain)은 건강한 가족의 특성으로 감사와 존중, 가족원이 함께 즐겁고 만족스러우며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내기, 바람직한 의사소통, 가족원의 유대감, 결속감과 책임, 위기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능력 등을 들고 있다.

건강한 가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 즉 건강한 가족은 가족의 형성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구성원들의 의식적인 노력과정을 통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친밀감, 응집성, 위기관리능력 등과 같은 가족원의 내적 기능이 잘 작동되고 있다면 우리는 한 부모 가족이든 다문화 가족이든 그 형태를 불문하고 건강가족이라 평가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다문화 가족으로 아버지 없이 성장한 한 부모 가족의 구성원 이었다. 백안시되었던 한 부모 가족을 극복한 오바마 성공신화는 분명 가족 내에서 무조건적인 긍정적 관심과 사랑 그리고 결속력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일 것이다.

우리 사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자살과 같은 사회 병리적 현상들은 분명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숙제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건강한 사회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분명 건강한 가족을 더욱 확대하고 해체된 가족의 건강성을 적극적으로 회복시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가치는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좀 더 유연하고 적극적인 시민의식과 자세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가치가 살아 숨 쉴 때, 우리사회는 서로에게 ‘희망을 권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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