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절망을 보다
학교에서 절망을 보다
  • 김흥주
  • 승인 2010.05.27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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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익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지역사회교육전문가(지전가)를 충원하는 면접시험에 참여하였다. 지전가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학력증진, 정서지지, 문화체험, 복지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학력격차를 극복하려는 교육복지사업을 실질적으로 진행하는 전문가다. 학교 측 입장에서는 교육복지 사업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진행하느냐가 지전가의 역량에 달려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신중하게 선택하려 하였다. 나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학교 측의 입장과 지전가가 가져야 하는 전문성을 고려하여 면접 점수를 부여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면접과정에서 나온 학교장의 망언(?)이었다. 면접 대상자 중 한 명이 검정시험 출신이었고, 교장은 이를 트집삼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김대중 대통령도 고졸 출신이고, 노무현 대통령도 상고 출신이어서 지난 10년 동안 공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학력과 교육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학교장의 인식은 간단하다. 정규교육, 엘리트 교육, (좋은) 대학출신들만이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면접 대상자는 비록 검정시험 출신이지만 자격 요건이나 역량을 누구보다도 뛰어 났다. 그럼에도 학교장의 절대적인 영향력 때문에 채용되지 못했다. 학교에 절망한 첫 번째 이유다.

다가오는 6ㆍ2 지방선거의 핵심 이슈는 무상급식 문제다. 낙인이니 부자급식이니, 보편적 복지니 선별적 복지니 논의가 분분하다. 그 와중에 며칠 전 한 신문에 다음과 기사가 났다.

“전주의 여러 학교에 설치된 급식실 체크기 때문에 급식비를 내지 못한 저소득층 자녀들이 큰 상처를 입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자녀에게 중식비는 지급되지만, 야간 자율학습을 위한 저녁식사 값은 수급자들인 학부모 책임이다. 저녁 급식비를 제 때 내지 못한 아이들은 급식실에 들어갈 때 체크기에서 ‘삐 ~’하는 소리 때문에 공개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학교 측의 항변도 일리가 있다. 위탁업체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통제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2006년 개정된 학교급식법에 의하면 2010년 1월 19일까지 모든 학교는 위탁급식을 직영급식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법을 어기면서도 위탁급식을 하고 있고, 또한 급식실 체크 문제를 위탁업체 핑계를 대고 있다. 아이들이 먹는 밥상 문제를 경제성 논리와 효율성 논리로 따지는 학교의 모습에서 두 번째로 절망한다.

지난 5월 23일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서는 ‘피의 일요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유가 매우 처절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혐의로 기소된 현직 공립학교 교사 134명을 한꺼번에 파면 또는 해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기소된 사립학교 교사까지 포함하면 파면ㆍ해임 대상자가 180여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중징계 규모는 1989년 전교조 출범 당시 1500여명이 해임 파면됐다가 복직된 이후 최대 규모다. 그래서 전교조는 ‘피의 일요일’이라고 분노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선거 전략은 북풍과 전교조 때리기인 것 같다. 여당 의원 한 명은 전교조 명단을 공개하지 말라는 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그것도 모자라 정치활동을 이유로 교사들을 내쫒는다. 전교조는 좌파이며, 좌파 소속 교사들이 활개 치는 학교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없다는 이념 공세까지 덧붙여진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적어도 자녀들이 일류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학부모들은 전교조의 취지나 활동사항과는 상관없이 여당을 지지하리라는 확신 때문이다. 정치 수단이 된다면 학교든 교육이든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오만한 판단이다. 이것이 우리 교육현실에 절망한 세 번째 이유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가 같이 치러진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제대로 된 교육자치의 수립이야 말로 학교와 교육이 정치로부터, 이념으로부터, 잘못된 사회통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여한 만큼 교육이, 학교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세 가지의 절망은 결국 내 책임이다. 그래서 이번 교육자치 선거를 제대로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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