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를 외면하면 미래가 없다
투표를 외면하면 미래가 없다
  • 이한교
  • 승인 2010.05.2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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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귀중한 것이라 해도 그 수가 많아지면 소홀해지거나 천덕꾸러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더구나 이것들이 살아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생물이라면, 혼란스럽거나 차라리 없는 게 훨씬 나을 수도 있다. 누군가 이를 방치한 책임자가 있다면, 그를 향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래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무관심으로 딴전을 피우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얘기다.

6.2 선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며칠 전 시골 5일장은 종일 요란스러웠다. 자기만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을 할 수 있는 후보자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무질서하게 걸려 있는 수많은 현수막 만 바람 따라 흔들릴 뿐, 누구 하나 멈춰 서서 귀담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바람몰이 꾼인 도우미조차 무표정으로 몸만 흔드는 모습에 기분이 씁쓸했다.

문제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가장 소중한 사람을 선택하는 선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곳간 열쇠를 맡겨야 될 사람을 찾아야 되는데, 우리의 미래를 맡길 일꾼을 가리기 위해, 가는 걸음을 멈추고 잘 들어보고, 물어봐야 되는데, 진정성을 판단하기 위해 심사숙고해야 하는 유권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사를 뒤에 놓고라도 이들이 무슨 잔꾀를 부리는지, 무슨 욕심이 있어 목청이 갈라지도록 악을 쓰는지를 감시해야 한다. 왜 안면 몰수하고 길거리에서 춤을 추며, 자기가 제일이라고 말하는 저의를 유심히 살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왜 그들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설레발을 치며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지, 멈춰 서서 후보자들의 동공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그 숫자가 백이든 천이든 말이다.

선거는 잔치 분위기여야 한다. 그러나 차분하고 조용해야 한다. 후보자는 정정당당하게 실현 가능한 공약을 내세우고, 유권자는 이를 냉정하게 검증하는 심판관의 위엄이 있어야 한다. 막가파식으로 아파트 앞에 유세차량을 대놓고 개사 된 유행가의 볼륨을 머리끝까지 올려 도우미들이 율동을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눈에 잘 뜨이는 곳마다 경쟁적으로 현수막을 걸거나 건물 외벽을 자신의 사진으로 도배한다고 찍어주는 게 아니라, 가만있어도 인정하는 후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후보자는 아무 곳이나 원하는 곳이면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도 되고, 지정된 게시대가 아닌 곳이라도 법을 어기고 현수막을 걸어도 된다는 생각은 지금 당장 버려야 한다.

우리가 선택할 후보는 기본이 된 사람이다.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밴 사람이다. 진득하게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논리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어야 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반드시 어른을 공경하고 효자라야 된다는 것이다. 거짓과 궤변에 달통한 사람이 아니라, 조금은 어눌해도 세상을 보는 눈이 맑고, 이웃의 아픔을 함께할 수 있는 소박한 사람이어야 되는데, 현행 선거 풍토로는 이를 구분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못해 투표를 포기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보아야할 중요 후보가 너무 많다. 도지사도 중요하지만, 시장군수도 중요하고, 교육감과 교육위원, 그리고 도의원, 또 시군위원, 비례대표 정당 등 모두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한날한시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선택하라하면 누가 봐도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럴 바에야 달리기를 해서 순위를 결정하던지, 몸무게를 달아 판단하는 것이 매우 객관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근본적으로 유권자의 16%에 해당하는 60대 이상의 연령층에게 8번의 기표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24%에 달하는 20대 유권자에게 이런 모순을 가지고 투표를 요구하는 것 또한 설득력이 없다. 큰 결단으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결국 그 피해가 바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잘못된 제도라면 지금 당장 고쳐야 한다. 하루에 세상일이 다 결정되어야만 효율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경제적인 손실 때문에 하루에 선거를 치러야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살림 잘하는 일꾼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소중한 선택이 무관심으로 퇴락하는 선거제도라면 어떤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바꿔줘야 한다. 만약 이 틈을 파고들어 검증되지 아니한 후보가 당선이라도 된다면 그 손실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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