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수 진안우체국장>영화 `시' 를 보고
<이승수 진안우체국장>영화 `시' 를 보고
  • 권동원
  • 승인 2010.05.2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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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이유는 매 시퀀스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마치 시렁위에 겹겹이 쌓인 세탁하지 않은 옷가지와도 같은 삶의 편린들을 보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박사가 시사회 다녀와서 들려준 이야기가 귓전을 맴돈다. “이 영화는 적어도 3번을 봐야 한다. 처음에는 할머니를, 다음에는 소녀를, 그 다음은 시인을 만나라.”

‘시’는 우리 동네 이야기다. 영화 속에는 시인, 공인중개사, 경찰관, 노래방 주인, 선생님, 중학생 그리고 그들보다 나이가 많이 든 미자(윤정희분) 라는 이웃 할머니가 등장한다. 말썽쟁이 중3생 여섯 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한 여학생이 강물에 투신자살을 한다. 가해자 중에는 주인공 미자의 손자도 있다. 알츠하이머 병 초기 진단을 받고서도 그저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고자 하는 미자씨 에게 시련이 닥친 것이다. 합의를 위해서 500만원이란 거금이 필요했다. 생활보호자인 그녀의 형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액수다. 이런 현실을 앞에 두고서도 자신이 열중하고 있는 시를 향한 상념은 깊다. 그러나 자두에 맛이 들어가는 초여름의 들녘도,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시낭송회 뒷 풀이 현장도, 한 공범학생 아버지가 운영하는 노래방도, 소나기 쏟아지는 강변도, 버스 승강장 그 어느 곳도 시와 맞닿은 현장은 없었다. “시상(詩想)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찾아 가는 거예요.”라는 시인의 말에,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 건데요?”그녀는 시름 가득한 눈으로 묻고 싶어 했다. 그 흔한 보톡스 한대 맞은 것 같지 않은 노년의 윤정희! 그녀의 모습은 세상을 통할하고 있었다. 표정, 옷차림, 행동거지의 불균형이라니. 곧 울어버릴 것 같은 애수 띤 얼굴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그 간절한 모습을 또 어디에서 볼 수 있을지? ”대답 좀 해 줘요.“라고 채근 할 것 같았으나 턱을 향해 깊이 파인 입 꼬리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도대체 세상은 몇 살까지 살아야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있는가? 내면과 합치되는 아름다움이 있기는 한 걸까? 시를 지도하는 선생님(김용택 시인 분)은 말한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시를 간직하고 있다고, 그래서 가슴에 꽃을 달고 다닌다고.’ 또 '죽은 지 한 달 지난 고양이 같은 하늘 빛’이란 시어를 내놓은 시인이라며 다른 시인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는 어쩌면 삶의 여정보다 더 깊고 어려운 게 시세계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들게 한다. 어찌됐든 이 영화는 인생, 그리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시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그것은 정녕 우리의 소망이기도 하리라. 세상에 시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엔딩에서 관객들에게 맡겨놓은 여운이 너무 많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주인공이 못 다한 이야기를 추적하느라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미자! 이미 아름다운 시인이 되어버리고만 소녀, 그녀는 이제 어디로 향해 가는가. 세상과 맞닿은 시를 만나러 가는가? 그렇다면 그 곳에는 그녀가 그토록 바라는 시상이 꼭 있기를 바란다. 500만원 같은 질곡이 없기를 빈다. 정호승 시인의 ’그리운 부석사‘를 알리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가쁜 숨을 몰아 쉰 것은 죽음의 충격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다. 옹색한 삶을 넓은 가슴으로 포용하려 드는 그러나 그 방법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창동 감독의 저의를 살피기 위해서다. 시(詩)! 다음주에는 ’소녀‘를 보기위해 극장을 찾을 것이다. 아는가. 미자 할머니의 뒷모습이라도 다시 만나는 행운이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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