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의 삶, 그 세 가지 얼굴
한국 남성의 삶, 그 세 가지 얼굴
  • 김흥주
  • 승인 2010.05.04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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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저마다 사회적 지위가 주어지고, 이에 따른 다양한 역할들이 있다. 그런데 한 개인에게 있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그 여러 가지 역할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한국처럼 공공 영역을 건실하게 구축하지 못한 채 가족주의적 에너지만으로 압축 성장해온 사회일수록 역할 부조화가 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에서는 좋은 부모이면서 동시에 좋은 시민이 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또한 좋은 부모이면서 동시에 좋은 직장인이 되기도 어렵고, 좋은 시민이면서 동시에 좋은 직장인이 되기도 어렵다.

남성에게는 다양한 역할기대가 주어지고, 이러한 기대에 잘 부응하지 못할 때에는 역할갈등이 일어난다. 좋은 조직이란 이러한 역할갈등이 잘 해소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구성원이 다양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한국의 조직사회는 조직의 목적달성을 무엇보다 우선시하기에 개개인의 사정을 배려하지 않는다. 가정과 회사일이 부딪칠 때 가정을 제쳐두고 회사에 충성해야 살아남는 한국 남성들의 슬픈 현실이 여기로부터 시작된다.

남성들이 조직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지속적이면서도 치열한 전쟁과도 같다. 때로는 업무 이외의 일에 동원되기도 하고,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상품화된 여성의 성적 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가정으로 돌아가서는 딸의 밤늦은 귀가를 꾸짖거나 아들의 성(性)적 고민을 나눠야 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언제나 가정에서의 삶, 직장에서의 삶, 일상이나 밤의 세계에서의 삶이 갈등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한국 남성은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지배하는 세 가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세 가지 얼굴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얼굴 뒤에는 각각을 지배하는 세 가지의 남성성 이미지가 숨겨져 있다.

첫째, “엄격, 규율, 절제, 근엄, 냉담, 무뚝뚝함, 자존심, 권위”로 상징되는 전형적인 남성다움 이미지다. 이는 직장의 공식적인 일과 가부장적 가장의 역할을 수행할 때 나타나는 것들이다.

둘째, “난폭, 무절제, 방탕, 폭력, 광기, 지배”로 상징되는 권력과 쾌락의 장치들이다. 이는 직장에서 업무 외의 일을 수행하거나 밤의 은밀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끼리끼리 문화’에서 나타나는 것들이다.

셋째, “나약, 초조, 불안, 우울, 열등감, 방황, 소외, 왜소함, 무능, 권위실추, 좌절, 의존적”으로 상징되는 내면의 모습들이다. 특히 지나친 경쟁의식과 성공에의 압박이 때로는 남성 자신을 파멸로 이끌기도 하는 데, 이러한 남성의 지나친 강박관념이 치사적인 성역할(lethal sex role)로 이어지면서 남성성의 또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 이미지는 개념적으로 구별한 것일 뿐 실제로는 연속적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첫째와 셋째의 이미지는 공존하기 어려울 만큼 대조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따라서 같은 남성이라 할지라도 다양한 부류가 존재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순된 이미지들이 동전의 양면처럼 한 개인의 인격 속에 함께 뒤얽혀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속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더 많다. 한 마디로 남성성은 복합적이며, 다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남성들은 언제나 업무에서, 역할에서, 심리에서, 행동에서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한국 남성. 이들의 삶은 언제나 진실이 없다. 그러기에 가정에서, 사회에서, 조직에서 진실한 관계 맺기에 언제나 미숙하다. 이제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 아니 벗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성의 세 가지 삶, 즉 ‘가정에서의 삶, 일상에서의 삶, 조직에서의 삶’을 일치시킬 수 있는 WLB(Work-Life Balance) 정책이 도입되어야 한다.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일과 삶의 균형’,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다. 회사생활, 가정생활, 개인생활이 일치되는 삶 만들기. 이것이 한국 남성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유일한 처방전이다.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근대의 남성 노동자 1인 중심의 복지체제를 탈근대의 양성 중심의 복지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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