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희 농촌진흥청 가축유전자원시험장장> 바래봉 철쭉과 보물창고
<유용희 농촌진흥청 가축유전자원시험장장> 바래봉 철쭉과 보물창고
  • 이보원
  • 승인 2010.05.0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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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바래봉은 철쭉이 피는 4월부터 5월까지 약 50-60만명의 상춘객이 찾아오는 명실상부한 자연경관을 이용한 대표적인 관광지다. 그 철쭉 군락지를 올라가면서 많은 사람들은 철쭉보다 귀중한 보물이 숨어 있는 창고를 무심코 지나치곤 한다.

1970년대 산업개발이 시작되던 시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머나먼 호주로부터 면양이 한국을 찾아왔고 지리산 바래봉에 둥지를 틀었다. 워낙 식성이 좋은 면양은 둥지 근처의 잡관목을 몽땅 먹어치웠다. 독성이 있는 철쭉만 빼고!

면양고기의 특유한 냄새는 한국 사람의 식단에 접근하기가 어려웠고 화학기술의 발달은 화학섬유라는 면양의 털을 필적할만한 물건을 만들어 내었다. 더 이상 면양의 사육가치가 없어지게 되었고 30여년전 3천여마리의 면양이 뛰어놀던 바래봉에 철쭉군락지라는 보물을 남기었다.

과거에 철쭉군락지라는 보물을 만든 창고가 새로운 가치로 각광을 받고 있다. 40여 년 전 한국이 처했던 식량문제가 지금은 지구촌 전체의 문제로 발전하였다. 1800년대 약 10억 명이었던 세계인구는 지금 약 65억 명이 되었다. 다행히 인류는 혁명에 가까운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1960년대부터 연간 2~4%씩 농업생산성을 증가시켜 어느 정도 식량문제는 해결해 왔다. 그러나 이런 농업생산성은 특히 후진국에서 인구의 증가율을 능가하지는 못하였다.

2010년은 국제연합이 정한 “생물다양성의 해”이다.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생물종이 살고 있는지는 연구자들마다 다르지만 최저치로 볼 때 170만~180만종으로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많은 생물종 중에서 선사시대에 인류가 이용하였던 식물은 1,500종이었다고 한다. 지금 인류는 80여종만 이용하고 있으며 식량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30종에 불과하다고 한다.

특히 축산분야는 사육규모의 확대, 생산성 증대, 품종개량, 사양기술의 발전과 기계시설의 자동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다른 농업부분보다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이러한 일방적인 생산주도의 산업 활동은 생태환경에 부하를 준 원인이 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기후변화, 예기치 못한 악성질병의 발생 등 급변하는 자연환경을 대처하기 위해서 다양한 품종의 가축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응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2007년 세계식량기구(FAO)는 지구촌에 약 7천6백여 품종의 가축이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발표했다. 인류는 지난 50년간 매월 1개의 품종을 멸종시켰고, 축산물 생산의 70%가 일부 잘 개량된 품종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비극적인 사실과 품종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다양한 가치를 보존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나라도 산업화 과정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가치가 낮다고 판단하여 재래가축의 사육을 기피하였고, 재래닭과 재래돼지는 멸종의 위기까지 처하게 되었다. 선조들이 문헌에 기록하였던 것을 보면 털이 푸른빛을 띠고 있는 청우, 7초 이상을 울었다는 장명계, 키가 90㎝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과하마 등은 이제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도 흑우, 칡소, 긴꼬리닭 등은 우리 가축 유전자원에 관심이 많았던 민간에 의해서 그 명맥만 유지되어왔다.

농촌진흥청은 재래종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유전형질의 가치를 높이 판단하고 재래돼지, 재래닭을 30여 년 전부터 수집 보존 개량하여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으로 만으로는 미래의 식량안보에 대처하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우리나라에 존재하였던 모든 가축유전자원을 국가단위에서 관리하기 위해서 바래봉 기슭에 2004년도 가축유전자원시험장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지금은 가축유전자원으로 살아있는 한우(황우), 흑우, 칡소, 왜소한우, 재래닭, 긴꼬리닭, 면양, 염소 및 사슴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액 및 수정란을 생산 수집하여 동결보존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농사꾼은 배고파 굶어 죽어도 종자 자루를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었다. 이것은 조상대대로 이어온 토종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자 재산이었다. 종자 주권과 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종자를 보존하고 이용토록 기반을 갖추어야 된다. 30여년전 바래봉의 철쭉군락지라는 보물을 만든 것처럼 미래에 또 다른 보물을 만들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창고지기들은 지금도 열심히 가축유전자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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