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석 국회의원> 이래도 검찰개혁을 외면할 것인가
<이춘석 국회의원> 이래도 검찰개혁을 외면할 것인가
  • 서울=전형남
  • 승인 2010.04.28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4번째 만에 돌아왔다. 법무부 장관을 출석시켜 스폰서 검사에 관한 긴급현안보고를 듣자는 민주당의 요구를 세 번 외면한 후였다. PD 수첩이 방영된 후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감이 얼마나 높았던가. 하지만 한나라당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법무부는 무성의한 모습만 보였다. 어제 필자가 받은 법무부 보고자료는 달랑 2쪽이었다. 그나마도 언론보도보다 못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명백한 사건을 두고도 눈 가리고 아웅 하려는 모습에 허탈과 분노를 넘어 피로감마저 몰려왔다.

PD수첩을 보면서 대다수 국민들은 두 눈과 귀를 의심했다. 그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검찰이 스폰서로부터 성접대를 받고, 평검사로부터 검사장에 이르기까지 촌지와 향응을 수수했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았다. 적어도 검찰은 법원과 더불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청렴해야 할 집단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PD수첩 화면을 보면서 6~70년대 권위주의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검찰 자체진상조사, 신뢰할 수 없어



지금 검찰에서는 자체적으로 진상조사단을 꾸린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로만 구성된 진상조사단이 사실을 제대로 밝힐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검찰이 자체 조사로 제 식구를 벌한 적이 있었던가. 과거 삼성 떡값과 같이 이번 역시도 실체규명보다는 흐지부지 끝날 우려가 더 높다.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도 마찬가지이다. 위원장은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스폰서 검사의 원인으로 한국사회 특유의 온정주의를 꼽았다. 그리고 검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매도하지 말고 따뜻한 눈길로 격려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게다가 회의 첫날, 7명의 민간위원 중 2명이 해외 출국으로 불참했다. 과연 진상규명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이번 사태에 대해 ‘특유의 온정주의’로 일관할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를 포함한 민주당에서는 특별검사 실시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운동경기에서 제3자를 심판으로 세우는 것이 옳듯이 이번 사태 또한 검찰로부터 독립된 특별검사가 사건을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나라당과 검찰 역시도 어물쩍 넘어가려는 속셈이 아니라면 특별검사 임명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새로운 칼을 준비해야 할 때



주지하다시피 검찰은 정의를 구현하는 사회의 칼이다. 사회의 칼이 썩어서는 환부를 제대로 도려낼 수 없다. 검찰 스스로가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듯 그만큼 높은 책임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어느 국민이 검찰에게서 책임이나 긍지를 찾을 수 있겠는가. 국민의 눈에는 그저 검찰개혁의 시급성과 당위성만이 부각될 뿐이다.

지난 2년간 검찰의 행태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리한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더니 이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서 별건수사로 압박하고 있다. 단지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인터넷에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수많은 범법자를 만들었다. 정연주 전 KBS 사장과 PD수첩 재판,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거부... 국민으로부터 사정권력을 부여받은 검찰은 지난 2년간 국민을 무시한 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벌이거나 스스로 권력이 되어 칼춤을 추었다.

지금은 검찰을 개혁해야 할 때이다. 무뎌진 칼을 버리고 새로운 칼을 준비해야 할 때이며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화를 막아야 할 때이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감찰제도 강화, 피의사실공표죄의 엄벌, 검찰총장의 국회출석 의무화…. 방법은 이미 다 나와 있다. 남은 것은 우리의 의지이다.



검사스러움을 위하여



한 때 ‘검사스럽다’라는 말이 유행했던 기억이 난다. 이 말은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했고 긍정적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검찰이 검찰다웠을 때 우리 사회는 언제나 ‘검사스러움’에 열렬한 지지의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지금의 ‘검사스러움’은 어떠한 뉘앙스로 쓰이고 있던가. 떡검, 썩검이라는 세간의 평가만 줄을 이을 뿐이다.

필자가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검사스럽다’라는 말이 살아있는 권력도 겨누는 정의의 화신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이란 여야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정의를 다시 세우기 위한 시대적 과제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