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남 전북지방조달청장> 선조들의 지혜가 살아있는 풍요로운 고창
<이성남 전북지방조달청장> 선조들의 지혜가 살아있는 풍요로운 고창
  • 김완수
  • 승인 2010.04.1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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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얼었던 묵은 기운을 토해내 듯 갈아엎은 땅 위로 붉은 봄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버들개지에 물이 오르고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는 봄날, 동백꽃으로 유명한 고창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으니 몸은 벌써 그곳에 가 있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봄이 언제 오려나 했는데 계절의 변화는 서서히 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 같다. 읍내에 들어서니 평야보다는 조금 높은 야산들이 도시 전체를 물결처럼 감싸고 있다. 높고 평평한 땅이라고 하여 고창(高敞)이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고창하면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고인돌 유적을 빼놓을 수 없다. 고인돌 밀집 지역인 상갑리 일대에 들어서니 500여기의 고인돌이 야산에 옹기종기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과 마주하니 선조들의 삶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아득한 선사시대에 바위틈에 쐐기를 박고 물을 부어 나무의 팽창함을 이용해 커다란 덮개돌을 채석하였다고 하니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가 경이롭기 그지없다.

이곳 고인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재된 것은 밀집도가 높고 다양한 형태 때문이라고 한다. 왜 이곳에 유독 많은 고인돌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지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곳 고창이 타지역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기에 사후세계를 중시하는 장례문화가 크게 발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돌 유적지와 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역사로부터 상속받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느낌이다.

아득한 고대, 얼굴모를 선조들의 훈훈한 음성을 뒤로 하고 고창 읍성을 찾았다. 돌을 머리에 이고 성곽을 한 바퀴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을 간다는 전설이 있어 여자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성벽을 따라 도는 풍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말을 들으니 성을 밟는 느낌이 남다르다. 고창읍내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가슴이 탁 트인다. 봄이 한창일 땐 성벽을 따라 빨갛게 핀 철쭉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고창읍성은 호남의 여러 고을 주민들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으로 구간마다 돌을 만든 지역이 표시되어 있다. 백성들이 힘을 합쳐 왜구에 맞서 싸웠을 그 당시를 떠올리니 문득 나라장터에 해커들이 침입하는 사이버 전쟁 상황과 겹쳐진다. 선조들이 돌을 모아 위기에 대비하였다면 정보사회의 우리는 어떤 지혜가 필요할까? 이제는 세계적인 명품이 된 나라장터를 잘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도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과 무어 다를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휴일 이른 아침에 전주에서 출발하여 고창답사를 시작한 것이 벌써 정오가 넘었다. 볼 것은 많지만 마음이 바빠 미당 서정주 시인의 생가와 인촌 김성수 선생의 고택에 들러 당대 최고 시인의 숨결과 호남 명문가의 위용을 느끼며 선운사로 향했다. 선운사 뒷산자락에 군락을 이룬 동백꽃이 꽃망울을 말갛게 머금고 있다. 사월 중순이 되어야 만개한다고 하나 동백은 꽃망울과 진초록 잎이 어우러져 있을 때인 지금이 더 아름답다. 선운사 앞마을에서 이곳 명물 풍천장어에 복분자를 한잔 곁들이니 이곳에 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창은 호남의 경제 중심지였다가 토호세력들이 호남선 철도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여 오늘날 경제의 중심지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선조들이 남겨준 소중한 문화유산과 이곳의 특산물인 복분자, 풍천장어, 고구마, 수박 등이 국민에게 더욱 사랑받아 그 옛날 경제의 중심지였던 화려한 영화를 되찾기를 바란다. 오월부터는 청보리밭으로 초록 물결이 더한다고 하니 그때를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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