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 좀 나아져야 할 텐데(녹음 정국)
살림살이 좀 나아져야 할 텐데(녹음 정국)
  • 익산=소인섭
  • 승인 2010.04.0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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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단체장 선거로 기억된다. 한 지역에 출마한 후보자 여럿이 동반 해외여행을 떠난 일이 세간에 화제가 됐다. 이들은 난립한 후보가 저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선거판 휘젓기가 결국 지역민의 행복추구권에 반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후보들 부부가 같이 떠난 이 희대의 사건은 결국 유권자에게 후보자 없이도 정책을 차분히 검토할 수 있는, 밀고 당김이 없는 ‘정조’의 시간을 제공했을 것이다. 선거판을 읽는 한 지역 인사가 때마침 그 일을 떠올린 것은 ‘자조’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된다.

익산의 선거 정국이 참고서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지역으로서는 거대정당인 민주당이 갈피를 잡지 못한 가운데 발생한 일이라 크게 나무랄 일도 아니라지만 지역민의 자존심은 심하게 구겨졌다. ‘녹음 정국’을 이름하는 것이다. 시장 공천을 두고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돈 얘기를 한가운데 ‘녹음 기술자’로 불리는 한 참석자가 육담까지 섞어가며 주고 받은 말을 고스란히 담았다. 또 지난해에는 시의원 천거를 두고 정치인들이 나눈 7천만 원∼8천만 원 얘기가 녹취됐다. 이들 녹취록은 지난달 세상 빛을 보았지만, 시장 유력 후보자를 겨냥한 녹취건이 있다며 기자실을 기웃거리는 모습에 시민들은 쓴웃음을 짓는다.

세간에는 “녹음기 장사를 하면 잘 될 것이다”라는 말이 “시중 녹음기가 바닥났다”는 말을 낳았고 “전화기를 들면 일단 녹음 걱정부터 된다”라는 자조까지 탄생시켰다. 이제 ‘돈 공천’으로 불리는 녹취공방은 신문과 전파매체를 통해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 됐다.

“…그래서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 어느 방송사 개그 프로그램중 한 코너인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에서 여성을 향해 울부짖듯 묻는 연기자는 이 코너를 통해 구애중인 ‘약자’ 남성이 ‘강자’인 여성 앞에 얼마나 나약한 모습을,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지 웅변한다. 하지만 공천을 앞두고 돈 얘기가 오가고 시도 때도 없이 녹음기를 틀어 대며 불신사회를 빚은 당사자들은 누구인가. 시민들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한껏 자세를 낮춰야 할 인사들이다. 살림살이 걱정을 시민을 대신 해야 할 위인들 아닌가.

행복을 짓밟는 자는 행복을 논할 자격이 없다. 시민을 더는 부끄럽게 만들지 마라.

익산=소인섭기자 i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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