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렬 우석대 행정학과 교수>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과 경술국치
<이병렬 우석대 행정학과 교수>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과 경술국치
  • 이수경
  • 승인 2010.03.2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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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의 역사상 처음으로 민족의 정통성과 역사의 단절을 당한 국가적인 치욕사건으로서 1910년, 경술년에 일어난 치욕이라 하여 경술국치라 일컫고 있다. 1905년 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 됨으로써 사실상 식민지의 길로 들어섰지만 우리나라의 꺼져가는 운명을 혼자 몸으로 국치를 막아보려 최후까지 몸부림쳤던 안중근의사가 순국한지 오늘로 꼭 100년을 맞는다.

1909년 10월 26일 탕! 탕! 탕! 일본의 근대화를 이룬 중요한 인물 중 한명이고 또 초대 내각총리대신이고 일본의 화폐에 사진이 올라가 있을 정도로 가장 영향력 있는 죽은 사람 중의 하나인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에 쏜 정의의 총성이었다. 하얼빈에서 울려펴진 세발의 총성은 잠든 우리의 군대와 우리의 무지와 우리의 약함과 울분을 흔들어 깨웠다. 안중근의사는 나태한 대한제국 정부를 향해서, 제국주의의 팽창을 향해서, 요원한 동양평화의 장벽을 향해서 총구를 겨누고 저격한 것이다.

현장에서 체포된 뒤 이듬해 2010년 2월 14일 일제의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2월 7일 개시된 재판 이후 단 일주일 만에 일본제국형법 제199조에 의거 사형을 언도받았다. 안중근의사는 최후진술을 통해 끝까지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독립특파대장’의 신분이기에 일제법정에서 재판받는 것 자체가 원천무효임을 선언하고 만국공법, 즉 국제법에 의해 재판 받아야 마땅함을 천명했지만 사형언도 후 40일 만인 100년 전 오늘 3월 26일 어머니 조마리아여사가 보낸 수의를 입고 전격 처형됐다.

안장군은 ‘죽음에 대해서 사람은 반드시 한번은 죽는 것이므로 죽음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다. 인생은 꿈과 같고 죽음은 영원한 것’이라고 밝혀 죽고 사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으나. 그가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조국의 운명이었다. 사형언도의 선고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장남에게 어머니 조여사는 “네가 행여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어미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대장부로 태어나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였으니.... 죽음으로 자신의 이름과 나라의 이름을 빛낸 충신열사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사형선고를 받거든 당당하게 가라.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라고 전갈을 보내며 당부했다. 실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었다.

사람은 그가 죽은 나이 멈춘다. 생은 이름으로 남는다. 비록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갔지만 안중근의사이자 장군은 한국이 낳은 위대한 애국자이고 선구자다. 레닌은 “꿈과 현실사이에 실날같은 끈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안중근은 자신이 꿈꾸었던 세상을 두 동생에게 사형집행전날 말한 마지막 유언에서 볼 수 있다. “내가 죽은 뒤 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처형되기 직전 “나의 거사는 동양평화를 위해 결행한 것이므로 한.일간에 화합하여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100년이 지난 후에도 유해를 찾지 못함을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안중근의 정신이다. 정신을 유해와는 달리 실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중근은 지금도 우리의 심장과 영혼에 살아있는 조선의 독립투사다. 어제 3월 25일 육군은 육본 지휘부 회의실을 ‘안중근 장군실’로 명명해 개관했고, 해군은 최신형 잠수함을 지난 해 안중근함으로 명명해 12월1일 취항했다. 전국 곳곳에서 순국 100주기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면서 살아있는 안중근의사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경술국치의 100년을 기억하고 순국하신지 100년 전의 그날을 다시 맞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의 숭고하고 고귀한 정신을 이어받아 한반도 조국과 민족의 통일, 동양의 평화를 이룩하는 일은 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가능테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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