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연고주의 문화와 시민사회
탈연고주의 문화와 시민사회
  • 김우영
  • 승인 2010.03.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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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선거철이다 보니 각각의 후보들은 자신의 얼굴과 경력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후보의 입장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지지층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러다 보니 후보들은 자신과 지연 학연 혈연과 같은 연고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끌어 들이는데 우선권을 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시민들 역시 선거에서 연고 관계를 떠나서 후보의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비전과 정책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최종의 선택에서 연고 관계의 후보를 선택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기도 한다.

지난 우리의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러한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려서부터 개인의 창달보다는 가문과 지역, 동문 사회의 지위와 명예를 우선시 했던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연고 집단에 대한 충성심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민주 시민사회는 전통사회의 가족 중심, 지역 중심, 학벌 중심의 신분적 규제를 지양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의 연합체를 목표로 성립되었다. 시민 사회의 윤리는 연고주의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가치와 규범을 사회적 선택의 원리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신분 규제적인 전통사회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시민 사회로의 이행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은 탈연고주의 문화이다. 전통사회가 아닌 시민사회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들에게서는 탈연고주의적 성향이 나타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같은 도시에서도 다른 동으로, 한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한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 이동과 이주가 일상화 되어 있고, 다양한 문화와 전문성을 가진 집단, 개인과 소통해야 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연고주의적 사고는 스스로 개인의 가능성과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론,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연고 집단의 공동체가 해체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연고 관계는 우리가 자의로 선택한 것이 아닌, 자연적으로 운명적으로 형성된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이다. 또한 모든 사람은 연고 관계 속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고, 사랑을 배운다. 연고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정과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연고 관계는 인간의 생활에 필수적인, 그 자체로서 소중한 도덕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자연발생적인 인간관계의 원리를 사적인 영역이 아닌 공적인 영역에서까지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채택할 때, 연고주의라 말하게 된다.

연고주의가 선거, 정부의 기관과 대학, 기업과 같은 공적 영역에서의 공공 선택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곧 시민 사회의 공적인 원리를 무력화시키고 사문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공적인 영역을 개인 사유화하는 범죄이기도 하지만, 시민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배경적 조건이 되는 기관들의 효율성,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그리고 민주 시민 사회를 실현하고자 들여온 희생과 노력들을 무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공공 기관의 많은 비리 사례들과 비효율성, 불공정성의 원인들이 연고주의적 인사 관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연고주의의 비효율성의 사례들은 공공 기관의 실패 사례에서 만이 아니라, 연고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가족 중심, 지역 중심, 학벌 중심의 경영을 해온 기업들의 도태 사례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연고적 동질 집단 내에서의 상하 관계의 엄격성은 한편으로 빠른 의사 결정과 일사 분란함을 장점으로 할 수 있지만,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또는 창조적인 일에 필요한 자유로운 발상이나 다양성은 억압될 수 밖에 없다. 집단적 동질성과 충성심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는 정작 구성원들의 사회적 생존에 필요한 전문성이나 문화적 다양성을 발전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탈연고주의의 당위성은 연고주의가 개인들의 공정한 기회균등을 봉쇄하여 사회적 불공정성을 심화시키는데 있다. 민주 시민 사회에서 어떤 개인이 인종이나, 성별, 신분, 출신 등 자신의 자유 선택과 무관한 불가피하게 가지게 된 조건들 때문에 특혜를 받거나 차별을 받는 것은 불공정한 대우라고 할 수 있다. 공정한 기회균등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룰이다. 게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조건에서 공정한 룰에 따라 다른 경쟁자들과 ‘페어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새로운 신분제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만 연고주의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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