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수 언론인/ 민주평통자문위원> 韓日윤동주 서거 65주기 콘서트
<강철수 언론인/ 민주평통자문위원> 韓日윤동주 서거 65주기 콘서트
  • 한성천
  • 승인 2010.03.1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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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나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2년 1월 24일 죽는 날까지 한점 부끄러움 없이 살려 했던 시인은 두 달 만에 “참회록”을 썼다.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했음을 적고 있다. 스물네살의 시인은 일본유학을 위한 도항 증명서를 얻기 위해 욕됨을 감소하고 창씨개명을 했던 것이다.

낯선 도쿄에서 외로움과 싸우던 시인은 그해 가을 사상적 동지 송몽규가 다니는 동시샤(同志社)대학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일 년 반 뒤 사상범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된 시인은 독립운동을 이유로 다음해 7월 영어의 몸이 됐다.

해방을 반년 앞둔 1945년 2월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 독방에서 생체실험대상으로 고통에 시달리던 시인은 27년 2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했으며 한 달 뒤 송몽규도 그 뒤를 따랐다.

이렇듯 윤동주 시인의 갑작스런 죽음과 비극적인 생애는 그의 고고한 시편들과 함께 순교자적인 이미지를 깊게 각인시켰다.

그가 시인으로 데뷔한 일 없고, 시집 한집 남기지 않았지만 한국 현대시 100년을 대표하는 시인중에 한 명이 됐다.

그의 시비가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세워질 정도로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에 가장 널리 사랑받는 시인이 됐다.

시인들은 말한다. 시는 삶과 꿈을 가꾸는 언어의 집이라고.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시인의 모국이다.

그렇다. 시인은 모국어로 생각하고, 모국어로 시를 쓴다. 모국어와 함께 태어나서 한세상을 살다가 죽는다. 시인에게 “모국어는 또 하나의 목숨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전주기전대학(학장 직무대행 서정숙)은 일본교토예술대 내 교토예술극장 춘추좌에서 윤동주 시인의 추모음악회가 지난달 16일 열렸다. 이번 음악회는 가수 윤형주(62·윤동주 시인 6촌 동생)와 함께 윤동주 시인을 기리기 위해 마련했다.

교토 예술대학 이사장인 도쿄아마 쇼쵸구는 교토조형예술대학 제 2캠퍼스를 재건축 하던 중 그 장소가 윤동주시인의 마지막 하숙집임을 알고 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추모행사를 했다.

이날 행사는 전주기전대학과 교토조형예술대학 전무이사(도쿠야마 유타카), 오명환 오사카총영사, 가수 윤형주 부부 등 주요 인사와 일본 각지에서 온 교포 500명이 참석했다.

한일 강제병합 100돌 앞두고 어두운 100년의 세월을 넘어 앞으로는 마음부터 협조하는 이번 콘서트에 대해 기전대학 측은 윤동주가 일제의 탄압 속에서 단단한 저항 시인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도 다른 형태로나마 시대정신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제일거류민단측도 양국의 우호증진에 기여할 것을 기대하며 선린외교에 크게 기여한 전주기전대학에게 크게 감사를 표한다며 좋은 콘서트 행사를 윤동주 시인의 추모와 민족자랑과 평화정신을 기리기 바란다고 붙였다.

민족의 역사와 말, 국혼을 지키다 죽은 윤동주시인의 정신과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든든한 버팀목인 것이다.

국권회복과 민족자존의 기치를 드높였던 선열들의 위엄을 기리는 그 정신도 함께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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