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석 국회의원> 이제는 국적까지 특권층 혜택인가
<이춘석 국회의원> 이제는 국적까지 특권층 혜택인가
  • 전형남
  • 승인 2010.03.0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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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법무부 담당자는 명쾌하게 답변하지 않고 에둘러 얼버무렸다.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니까 한국 국적을 박탈당한 사람에게까지 이중국적을 허용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지난 23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국적법 심사가 있었다. 법무부는 자랑스레 취지를 설명했다. 세계화 시대에 맞추어 이중국적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이 날로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경직된 단일국적주의를 버리고 해외 고급인력을 적극 받아들이겠다니,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외국 인재는 그렇다 쳐도 원정출산 등으로 이중국적을 가지게 된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이미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으로 살아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법무부 담당자의 설명은 장황했지만 결론은 단순했다. 기존에 한국 국적을 신고하지 않아 국적을 박탈당한 사람들에게까지 별다른 조건 없이 한국국적을 다시 주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외국 국적은 그대로 인정한 채 말이다.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인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병역, 납세 등 모든 의무를 우리와 똑같이 지고 있다. 이들은 다시 이중국적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스스로 한국인의 삶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이중국적의 혜택을 주겠다니. 그것도 단지 신고만 하면 누구에게나 허용하겠다니.

형평성에 맞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당초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취지가 무엇이었던가. 해외 우수인력을 유치하겠다는 것 아니었던가. 애초 목표는 온데간데없고 은근슬쩍 국적 박탈자에게 특혜를 주는 법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또, 국적 박탈자의 대다수가 누구던가. 엄마의 원정출산 등으로 이중국적을 가지게 된 소위 강남 특권층이 아니던가. 이런 현실에서 어떠한 심사절차도 없이 무제한으로 이중국적을 주겠다는 것은 결국 강부자 특혜법에 불과하다.

게다가 일부 병역면제 우려까지 있다. 현재 병역법은 만 36세까지의 남성을 제1국민역으로 편입시켜 병역의 의무를 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국적법대로라면 만36세가 넘는 외국국적 보유자는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게 된다. 이번 국적법이 대한민국 1%만을 위한 특혜법으로 변질될 우려가 큰 것이다. 이런 법을 통과시키겠다고 국회에 제출한 것 자체가 국민 모독이자 국회 모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물론 법무부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사코 부인했다. 그렇지만 정부가 국적법 개정안을 발표한 이후에 미국 원정출산이 급격하게 늘어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하에 외국에서 태어난 특권층 자녀들의 이중국적을 허용하겠다는 정부의 속마음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 아니던가.

프랑스의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는 “법은 부자에게나 빈자에게나 똑같이 다리 밑에서 잠자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런데 부자들은 원래 다리 밑에서 잘 이유가 없다. 법이 공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적 약자와 평범한 서민들을 억죄고 차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국적법 개정안을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 중에 이중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제주도 여행조차 한 번 가기 힘든 것이 현실인데 누가 외국으로 원정출산을 나가고 누가 이중국적의 혜택을 얻겠는가. 과연 이 법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공평하고 합리적인 법이란 말인가.

결국 논란 끝에 법무부는 수정안을 다시 만들어서 제출하기로 했다. 그 수정안이 어느 정도 합리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과 같이 소수 특권층에 대한 혜택이 담겨있다면 결코 통과시키지 않을 생각이다. 이명박 정부가 부자를 위한 정부, 특권층의 정부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대한민국 국적까지 특권층의 이익에 맞추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이중국적은 엄격한 요건 하에서, 외국 인재는 적극 유치하되 특권층이 편법 혜택을 누리지 못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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