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 익산보훈지청 보훈과> 제91주년 3.1절을 맞이하며
<강유정 익산보훈지청 보훈과> 제91주년 3.1절을 맞이하며
  • 익산=최영규
  • 승인 2010.02.2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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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으로 전세계가 들썩이고 있는 요즘이다.

더군다나 대회에 참가한 우리나라 선수들이 기량을 뽐내며 연일 메달을 안겨주고 있어 대한민국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으니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즈음 어느덧 조용히 3.1절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로 91주년을 맞이하는 삼일절은 1919년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으로, 국내 및 해외에서 전개돼 우리민족의 독립에 대한 강한 희망과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준 거족적인 독립운동으로 오늘날까지도 역사적 의미가 크다.

1910년 일본은 우리의 국권을 강탈하고 헌병경찰을 앞세워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박탈했으며, 이에 애국지사들이 해외로 나가 군자금을 모금해 부일배 처단 등 지하운동을 전개하던 중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사상이 전 세계에 풍미하게 되자 대대적인 시위운동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이 때 일제가 황제를 독살했다는 소문과 함께 갑작스레 고종이 승하해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이 터져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인사동의 태화관에서 손병희를 비롯한 천도교, 기독교, 불교지도자로 구성된 민족대표와 각급 학교 학생, 시민 등 5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우리나라가 독립국이며 우리민족이 자주민임을 천명하는 독립 선언서를 낭독했다.

오늘날 3.1운동의 역사적 의의 중 하나로 독립운동의 참여 주체와 기반이 확대된 것을 들 수 있다.

초기에 일제에 대한 대항으로 청년, 학생들이 앞장섰던 양상에서 농민, 노동자, 중소상, 공업자 등 민중 세력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농민운동, 노동운동, 문화운동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하게 일어났으며 만주와 연해주에서는 독립군의 무장투쟁이 본격화돼 수많은 독립군 단체와 부대가 활동했고, 중국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해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외교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제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됐는데, 3.1운동을 보면서 기존의 무단통치로는 지배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더욱 교활한 문화 통치를 표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3.1운동은 세계사적으로 많은 영향을 줘 당시 제국주의에 압박을 받는 중국, 인도, 필리핀 등 여러 약소민족들의 민족운동을 자극하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표방한 민주 공화제를 확립된 계기가 됐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과 이로 인한 취업률 저조,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3.1운동의 역사적 의의 가운데 신분, 계급, 나이, 성별을 무시하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민족독립 열망의 외침이 쳤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할 수 있다.

동계올림픽으로 자칫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3.1절을 앞둔 요즘 백범 김구 선생의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의 소원은 독립이요, 두번째 소원은 무엇이냐 물으면 두번째 나의 소원도 독립이요, 세번째 소원은 무엇이냐 물어도 내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요”라고 하시던 말씀을 되새겨 보며 다시 한번 그날의 한민족의 결집력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래 본다.

익산=최영규기자 y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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