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품격있는 사회를 바란다
이제, 품격있는 사회를 바란다
  • 김우영
  • 승인 2010.02.1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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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품격있는 사회’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품격있는 사회의 화두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노무현 정부의 출범의 경우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서도 품격있는 사회를 내세운 바 있다. 그리고 매년 새해 방담에서도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그러나 올해는 일부 방송과 언론 매체에서 품격있는 사회를 한해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어 그 결과에 대해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2010년 G20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만큼 그에 걸 맞는 품격있는 사회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기대가 많으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연초부터 정치권에선 웬 강도론 논쟁이 치열하다. 집안에 강도가 들어오면 함께 싸워야 한다는 말이나, 집안 사람이 강도로 돌변하면 어떡 하냐는 말이나, 그 상황에서 적절한 품위있는 말이라고 할 수 없다. 각각 강도로 지칭하는 대상은 다르지만, 아마도 각자의 입장에서 정치적 반대세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합리적 토론의 상대로 보지 않고 강도로 폄하하는 것은 논쟁이라기보다는 사실 욕설에 가깝다.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것은 정치권의 행동문화만이 아니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스토리 전개도 도무지 우리를 이해할 수 없게 한다. 전혀 비상식적인 내용과 막말과 천박한 행동들이 이제는 오히려 시청률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요즈음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중학생들의 길거리 알몸 신고식도 일부 성인 문화의 막가파적 현상의 아류라 할 수 있다. 난폭함을 남자다움으로 빈티와 천박함을 매력으로, 조신함을 쑥맥으로 몰아가는 몰가치적 사회 문화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품격있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단순히 선진국가의 외형에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안정된 배경에서 모두가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이고, 품격있는 개인들로 구성된 품격있는 사회가 곧 우리에게 좋은 삶을 보장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의 발전을 유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갈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축소, 개인 간의 신뢰적 인간관계, 공동의 관심사와 가치의 공유, 개인 간의 소통과 자발적인 협력과 같은, 이른바 사회적 자본들을 확충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진단은 수년 전부터 품격이라는 말이 대유행하고 있는 이웃 일본 사회의 인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본에서는 <남자의 품격>, <여자의 품격>, <국가의 품격>이란 책이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국가의 품격>이란 책에서 저자 후지와라 마사히코 교수는 지금 21세기는 지난 세기처럼 근대성과 개발이라는 논리만으로 한 국가를 유지하기 어려운 한계에 봉착해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경제성장과 발전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정신문화적인 정서와 같은 개인의 품격을 회복하여 품격있는 사회를 만들어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지와라 마사히코 교수의 주장에서 보듯 경제와 산업과 같은 하드웨어만이 아니라, 개인의 품격과 같은 소프트웨어도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이다. 이제 우리사회도 삶의 경제적 조건 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질과 내용에 대한 평가에 주목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품격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품격있는 사회는 품격있는 개인들로 구성되는 것이지만, 품격있는 사회가 단순히 개인들의 노력만으로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척박한 풍토를 조장하는 제도 하에서 품격있는 개인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품격있는 사회를 위해서는 우선 사회의 제도들이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거나 모욕하지 않고 제도를 통해서 그 권한 하에 있는 사람들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품격있는 제도와 운용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종국적으로는 품격있는 제도를 만들어가고 운용하는 것 역시 의식있는 개인들이다. 우리가 각자 개인의 품격을 높이는 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모두가 좋은 삶과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품격있는 사회는 국가의 법과 제도만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그것을 만들고 운용하고,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큰 몫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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