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 잣대의 위험성
이념적 잣대의 위험성
  • 황선철
  • 승인 2010.02.04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은 누구 인가?

아시아인, 한국인, 전북인, 여자, 종교적 다원주의자, 시민단체회원, 노조원, 아파트 주민자치위원, 민주주의 신봉자 등에 전부 또는 일부가 속한다. 이는 나의 의지나 그와 무관하게 관련된다. 이는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을 뜻하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다.

특정한 성원으로서 정체성은 개인에게 긍지와 자신감과 공동체 간의 결속을 강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정체성에 근거한 분파주의는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배제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폭력을 야기한다. 해방 후 우리 사회가 ‘좌파와 우파’로 나누어져 수많은 야만적인 폭력이 발생했던 것이 이를 반증한다.

후생경제학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은 “인간 정체성에 대한 고립주의적 접근은 사람들 개개인을 단일한 소속관계에 확고히 고정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다원적인 집단들과 다중적인 충성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을 지워버린다”고 하였다.

그는 “단일한 정체성은 종파주의적 행동가들이 자주 사용되는 무기라고 하면서 다른 모든 소속 관계와 충성심을 무시하도록 선동하는 것은 매우 기만적일뿐더러 사회적 긴장과 폭력마저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최근 <미네르바, 강기갑, 피디수첩 제작진 등에 대한 무죄 판결>로 촉발된 사법부 및 법관 개인에 대한 보수세력의 비판이 연일 계속되었다.

한나라당, 보수언론, 보수단체 등은 일부 법관의 판결이 이념적·편향적?독선적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사법부 판결에 불만을 품은 보수단체 회원은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법원은 인권을 지키는 최후 보루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한다. 어느 누구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는다. 사법부의 독립은 종국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은 3심제 이다. 판결이 사실판단이나 법리적용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면 상소제도를 이용해서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보수 단체 등은 이런 제도의 취지와 절차들을 무시한 채 비난하였다.

여야 정치권은 법원과 검찰 등에 대한 사법제도개혁을 외치고 있다. 종래부터 논란이 되었던 수사권 및 공소권 남용, 영장제도, 공판중심주의 등이 논의의 핵심이다.

사법제도가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서 개선된다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개혁 논의가 특정 세력의 정치적?이념적 결속을 다지기 위한 한낮 쇼에 불과하다면 이는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 이다.

문제는 일부 보수 세력이 일련의 판결에 대해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어 단순화 시킨다는 것이다. 마치 중세의 마녀사냥을 떠오르게 한다. 무슨 ‘좌파’니 ‘우파’니 하면서 개개인을 줄 세우려고 한다. 이념적 단일성으로 편을 갈라서 한판 붙겠다는 기세이다.

이는 다양한 정체성을 무시하는 위험한 행위이다. 고립주의적 사고가 수많은 폭력을 수반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 처사이다. 이제 단일한 정체성에 순응하고 체념하는 그런 미친 사람이나 비굴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통합은 인간 정체성의 다원성을 더욱 명료하게 이해하는데 상당 부분 달려 있다. 즉 우리는 다른 개별 소속 관계를 무수히 맺고 있으며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상호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단일한 소속 관계를 강조하는 정체성은 우리 사회의 암적 존재로서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때로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사랑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다양한 정체성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