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방담(放談)
막걸리 방담(放談)
  • 김남규
  • 승인 2010.01.20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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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도민일보에 기고한 글을 돌이켜 보니 정치적 현안에 대한 글이 대부분 이었다. 시민단체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관심 분야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경인년 새해 첫 글인 만큼 우리 주변의 이야기, 막걸리 한잔에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해본다.

전주 사람들은 막걸리 이야기만 하면 자기의 일처럼 신나게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참 다양한 생각을 쏟아낸다. 웬만한 토론회보다 나을 때도 있다. 어디 막걸리집 안주가 뭐가 나오고, 어디는 욕쟁이 주모의 입담이 구수하다는 등 막걸리에 얽힌 추억담으로 할 이야기가 많다. 또한 정치 이야기, 아이들 교육 문제, 옛날 친구 이야기 등 막걸리 몇 잔에 모두가 수다쟁이가 되어간다.

80년대에 동부시장에 자리했던 세종집이 내가 처음 접한 막걸리집이다. 제사상 크기의 큼지막한 상에 올라온 온갖 안주는 이리저리 포개 놓아도 놓을 수 없을 만큼 계속 나왔다. 밥을 대신할 만큼 충분한 양이었다. 안주의 대부분이 푸성귀들이었다. 삶은 콩깍지, 배추뿌리, 손가락만한 삶은 고구마, 금방 텃밭에서 나온듯한 나물을 된장에 버무려 내놓는다. 대부분이 그 집에서 담근 된장과 간장, 고추장으로 버무리고 주인집 아주머니의 소박한 손맛이 더해 졌다.

그런데 지금은 횟집에서나 나올만한 안주까지 막걸리 집에 등장하고 큼지막한 돼지고기 수육이 올라오기도 한다. 타지 손님들을 데리고 막걸리 집에 가보면 먼저 놀라는 것이 안주의 양이다. 주전자 수가 더 할수록 바뀌는 안주가 모두 공짜라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한 것이다. 음식 인심이 푸짐한 전주를 보여 줄 수 있어 흐뭇하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막걸리집 안주가 서로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몇 집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 비슷한 점들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 안주의 가짓수와 양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예전의 손맛, 장맛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다. 요즘 장사하는 집에서 장 담는 집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그래도 몇 군데는 그 집 고유의 장맛으로 안주를 만들어내는 특색 있는 막걸리 집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막걸리 집 방담 중에 나온 이야기다. ‘전주에 한옥 마을이 없다’는 것이다. 시내버스 표지판 어디에도 한옥마을 표지가 없다. 지난해 여름 휴가철에 눈으로 보아도 전주를 찾는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 특히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엄마가 전주에 가서 비빔밥을 꼭 먹고 오라고 했어요!’라며 비빔밥집을 묻는 학생을 만났다. 그런데 시내버스에 ‘한옥마을’ 표시가 없어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외부인의 눈높이에서 잘 생각해 볼 일이다.

전주 막걸리는 주로 안주 이야기가 풍성하다. 정작 막걸리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 것도 한편 이상하다. 유통되는 막걸리 종류가 적어서 선택의 폭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전주를 맛의 고장이라고 하면 전국의 막걸리를 한곳에 모아서 ‘막걸리 품평회’를 열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전주 대사습놀이’처럼, 맛의 고장인 ‘전주 사람들이 인정한 막걸리’라는 이미지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또한 관광객들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1~2인용 막걸리 상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3병들이 한주전자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전주 막걸리를 맛볼 수 있도록 해보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두 주전자 이상을 먹어야 이윤이 남는다는 막걸리집 특성 때문에 한주전자만 먹고 나오기 미안하던 차에, 한주전자만 먹는 사람들에게 2천원 정도 더 받는 것으로 이미 정착되었다. 좋은 지혜다. 그러한 지혜로 관광객을 위한 1~2인용 막걸리와 안주를 개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는 말의 느낌이 갈수록 새롭다. 40대 중반을 넘다 보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조금씩 알 것 같다. 돌아보면 20대에는 과거의 것보다 새로운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열정을 내기도 하고 간혹 객기를 부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제는 변화보다 과거에 대한 향수와 지키고 보존해야 할 것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것이다. 어려서 먹던 것, 일상에서 자주 접하던 것을 나이를 먹어서도 다시 찾게 되는 것 같다. 술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본 것이 막걸리였고, 막걸리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추억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처럼 오래된 것에 자기의 일처럼 신나게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막걸리 집 이야기처럼 ‘정’과 ‘맛’이 묻어나는 새해가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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